'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눈앞의 이익이 있다 해도 그것을 취하는 것이 과연 옳고 정당한지를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논어(論語)의 헌문편(憲問篇)에서 유래한 성어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에게 한 말로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고 위험이 닥치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내가 남을 생각하며 욕심을 버려야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더욱 솔선수범하여 헤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자로가 공자에게 인간 완성에 대해 묻자 공자가 "청렴, 무욕(無慾), 용감(勇敢), 예능을 두루 갖추고 예악(禮樂)으로 교양을 높여야 한다."고 답한 구절에 나온 말로써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며,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 앞에 놓여 있을 때,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대의(大義)를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형제간의 의리를 위해 황금을 강물에 던진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내용을 보면, 어떤 의좋은 두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웠는데, 그 형제는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깜짝 놀란 형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형을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였지요. 그런데 오늘 금덩이를 나누어 갖자 문득 형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황금을 강물에 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에 형도 동생의 뜻에 공감하여 금덩이를 강물 속에 집어 던져 버렸다. 오늘날 재산다툼으로 형제간의 칼부림 나는 살벌한 세상과 견주어 보면 우리에게 시사 한바가 대단히 크다. 
 '견리사의'는 안중근의사께서 즐겨 쓰시던 성어로, 평소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危授命)'이라는 글귀를 좋아했고, 손수 많은 유묵(遺墨) 작품을 남겼으며, 온몸과 정신으로 그런 삶을 살았다.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까지 바치라'는 의미 앞에 절로 숙연해진다. 
고려 말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명언을 우리사회는 잃은 지 오래다. 양심과 소신에 따라 국정을 펴야 할 사람들이, 국민을 위한 권력을 자기 자신들이나 친인척의 배를 불리는데 혈안이 되었으니 바로 '세금도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음흉하여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16.4.8 본지보도)과 부당한 이익 추구가 만연하다보니 수단과 방법도 정당하지 못한 사회가 안타까울 뿐이다.
 '견리사의'와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똑 같이 볼 견(見)이 들어있는 사자성어이지만 내용은 천지(天地)차이다. '견물생심'은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으로, '견물생심'을 가진 인물이 지도자가 된다면 아마 그 물건창고는 남아 날것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탐욕 이상의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이 마땅하지 않는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을 가치 있게 받아 들여야 할 때이다. '견물생심'이 발동하여 내 주머니에 돈이나 챙기는 그런 몰염치한 인간은 멀리 추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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