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남해가 고향인 걸로 알고 있는데 타지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는지
-선소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7년 동안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과 군대생활을 해야 했기에 남해를 떠나 있었다. 연도를 계산하면 87년부터 94년까지로 기억된다.
문)남해로 귀향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처음에는 아내와 인디안모드 옷가게를 운영하다 건설회사도 경영했다. 마을 입구에 ‘선소마을’이라는 표지석은 건설회사를 경영할 당시에 기증한 것이다. 지금은 남해대학 산학협력단 안에서 남해디자인을 운영하고 있다. 

문)지역을 위해 사회활동을 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지나온 길을 갑자기 열어보려고 하니 참 많은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던 인연으로 태권도협회장 2년, 남해군생활체육회 이사 10년, 남해군축구협회 이사 5년, 골프협회 이사 4년 정도를 했다. 현재 남해읍체육회 사무국장을 하고 있으며 남해군낚시협회 회장을 작년부터 맡고 있다. 2005년에 JC회장 코리아남해를 역임하면서 15년 봉사활동을 했으며 현재 라이온스클럽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부군수와 새마을지회장 3인에 포함되어 여수엑스포 추진 위원으로 끝까지 역할을 마무리 했던 게 보람으로 남아 있다.
문)스포츠 활동과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이쪽으로 치중한 이유가 있다면
-‘체력은 국력이다. 건강은 운동에서 비롯된다. 올바른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근원을 일찍 깨달았기에 자연히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다. 아버지가 옛날에 라이온스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집안의 장손이었던 나는 아버지를 따라 많이 다녔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동창회‧의용소방대‧ 방범대‧ 배구클럽‧ 축구클럽‧ 골프클럽‧ JC회원, 낚시회 회장 등 20여 개의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아내는 어떻게 그 많은 모임을 감당할 수 있냐고 걱정을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지역민과 함께라면 힘든 줄 모르고 한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초등부 축구대회부터 어른들 축구대회까지 주최 주관을 한 축구협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덧붙이자면 전무이사로 활동할 당시 초등부 축구대회와 보물섬리그 50대 60대 축구대회를 창시했다. 어떤 이들은 청년회부터 새마을지도자 이장 등의 일을 통해 지역에 봉사하는 경우들이 많지만 나는 체육회 및 사회단체를 통해 봉사를 하고 싶어 이 길을 택했다. JC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이 대입시험을 쳤을 때 공설운동장에서 청소년 축제를 몇 년 동안 열었고 어린이날 행사도 개최했다. 망운산철쭉 군락지를 만들어 관광지 개발, 노도를 방문하여 주민들 잔치도 열고 노도마을에 유허비를 JC 선배님들께서 세웠다. 그곳에서는 쌀농사를 못 지으니까 쌀을 가져가서 위안잔치도 열고 의사들과 무료진료도 했다. 

문)언제부터 정치에 뜻을 두었고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
-지방자치단체 선거할 때 남해연락소장 홍준표 청년단장으로 활동했다. 평통자문위원을 2004~2007년에 했다. 2005년에 군의원에 출마를 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오랫동안 편찮으셔서 못했다.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였다. 지방자치민선2기 때부터 당에서 활동을 했다. 정치 쪽으로 눈을 뜬 것은 2005년 JC 회장을 하면서 경상남도 20개 시군을 돌아다니면서 정치하는 사람을 만나고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작년에는 서울로 가서 정치 수업을 받았고 교육수료도 했다. 현재 그 과정을 수료한 회원들의 단체인 원우회는 정회원이 135명 정도인데 교육을 끝내고 매일 정치적 이슈나 자기 지역의 현안, 중앙정부의 동태 등을 밴드나 카톡을 통해서 교류하며 안목을 많이 넓혀 가고 있다. 
문)군 의원 출마를 계획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남해를 위해서 어떤 부분을 챙기고 싶은지
-첫째 군민의 눈에 잘 띄는 군의원이 될 생각이다. 신발이 닿도록 지역을 위해 열심히 뛸 것이다. 그동안 느꼈던 것인데 출마자들이 일단 의원이 되고 나면 항상 뒷방에 앉아 소극적인 활동을 보였다. 유권자 위주로만 많은 활동을 하고 청소년과 청년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나는 청년층을 자주 만나면서 문제점과 그들이 바라는 점을 함께 공유하며 발전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둘째 연말연시에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데 연탄을 지원하는 것보다 보일러를 제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평소 들었다. 비용이 크게 발생하니 처음에는 한두 군데로 시작하다가 차츰 확대해서 난방 문화를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 남해를 거제도보다 더 좋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치적을 쌓기 위해 예산만 낭비하고 이룬 업적은 저조하다. 우리 남해가 관광으로 갈 거면 관광으로 가고 산업 쪽으로 갈 거면 산업 쪽으로 가야지 뒤죽박죽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없애려는 시점에서 연탄을 계속 고집해서는 안 될 말이다. 
셋째 청년들이 시간을 보내는 당구장에 70~80대 어른들도 온다. 어린이들이 PC방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세대별로 어울릴 수 있는 유휴공간을 확보하여 서로 즐기며 운동도 하면서 어울리게 해야 한다. 시골에 있다 보면 문화생활을 접하기가 힘들다. 군민들과 군 의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정서도 함께 함양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이 사회를 이끌어갈 재목들이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청소년들을 잘 길러야 밝은 남해가 활짝 열리기에 이런 부분은 절대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남해 발전을 위해 온힘을 쏟고 싶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