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형사계의 전설로 통하는  이치균 총경이 지난해 연말 경기남부경찰청 수원남부경찰서 수사과장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했다.
이 총경은 1957년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에서 고(故) 이재천‧박봉례 부부의 4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7세 때 아버지는 작고하셨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어머니 혼자 읍내시장에서 콩나물을 팔아 대학을 보낸 공로로 그의 어머니는 1979년 어버이날 경상남도지사로부터 장한어버이상을 받기도하였다.   그는 도마초(25회), 남해중(23회), 남해종고(5회), 용인대(77학번)를 졸업했다.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석사(88 서울올림픽 개최에 따른 주한 외국인들의 의식구조에 관한 조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박사(스포츠 참가 청소년의 학교폭력 가해행동과 심리적 특성의 차이)를 취득하였다. 그는 유도 6단에 태권도 2단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육군 병장 출신이다. 이 총경은 1984년 8월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직하여 처음부터 서울중부경찰서 형사를 시작으로 강력사건들을   담당하였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갈고닦았던 형사 실력을 발휘하여 경장, 경사, 경위까지 쉬지 않고 무려 세 번의 특진을 한 전설적인 베테랑 형사가 되었다.
서초경찰서 형사계 근무할 당시에는 조직폭력배 정수파 두목 등 일당 30여명을 모두 검거한 유공으로 1990년 경장으로 특진하였다. 특히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온다며 신도들을 끌어 모아 개인적으로 34억원을 헌납 받고 근거 없는 시한부종말론을 퍼뜨려 사회혼란을 일으킨 ○○교회 목사를 검거한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를 검거하기 위하여 집 주변과 교회를 중심으로 30여일간 청소부 등으로 가장하여 잠복하고 은밀히 내사하여 실체를 모두 밝히고 해결한 사건이다. 
그해 국내 3대 폭력조직의 하나인 구 오비파 두목 오아무개씨를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거하고, 범죄와 전쟁 당시 국내에서 10대 조직폭력배로 검‧경에 수배를 받고 도피 중이던 순천시민파 행동대장 강아무개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검거했다. 일본 야쿠자의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조직원수 약 8,000여명에 이르는 이나가와 가이(稻川會) 계열의 회사 자본 8억원 상당을 밀반입해 서울 강남 아파트와 충남 부동산 3필지 4,700여 평을 매입한 국내 거주 재일교포인 최아무개씨를 검거하여 일본 야쿠자의 국내 진출을 차단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조직폭력배 배후세력인 슬롯머신업계 대부 정아무개 형제사건 및 고위공직자 및 국회의원 비리연류사건을 해결한 유공으로 1994년 경사로 특진하였다. 서울청 강력계에 근무할 당시에는 양재동 이발관 살인사건 등 다수의 강력사건을 해결한 유공으로 1997년 경위로 특진 하였다. 형사반장이 된 이후에는 무고한 시민 20여명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유영철을 수사해 강력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 외 이 총경이 수사한 대형사건들은 복싱 동양챔피언 김사왕 살인사건, 현대노조위원장 서아무개씨 납치사건, 바다이야기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매니저 배아무개씨 살인사건 등이다.
그는 지존파 두목 김기환을 조사함에 있어 특수수사기법으로 자백을 받아 내면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동양챔피언 김사왕 살인사건에서는 이복동생을 범인으로 밝혀내는 데 있어 끈질긴 형사의 집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총경은 서울 송파경찰서 강폭반장, 서울청 광역수사대 폭력반장을 그쳐 2007년에는 강남경찰서 강력팀장에서 경감으로 승진하여 제주지방경찰청 서귀포경찰서 강력팀장, 강남경찰서 강력계장, 수서경찰서 강력계장, 강동경찰서 강력계장을 그쳐 2016년 경정으로 승진하여 경기청 수원남부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하였다. 그가 형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사건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강남경찰서 형사과 강력계장으로 재직할 때인 2010년 5월의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당시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계가 강화되었음에도 서울 강남의 한 특급호텔에서 조직폭력배 전 새마을파 두목 이아무개씨의 칠순잔치가 열린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서방파, 칠성파, 양은이파 두목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500여명의 조직폭력배가 모인다는 정보였다. 경찰은 칠순잔치를 빙자한 폭력조직간의 회합이라고 판단했다. 이 총경은 칠순잔치의 주인공인 이아무개씨를 찾아가 가족 위주로 잔치를 열도록 설득하고, 두목들에게도 불참하도록 통지하여 회합을 사전에 차단하였다.

그는 남해 출신의 집념과 실력을 보여주며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전설의 형사 이치균’으로 이름 석자만 남겼다. 34년간의 경찰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하고 무술년 새해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서 일반시민으로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오직 대한민국 형사였습니다”(퇴임사 요약)
저는 오늘 34년간의 경찰생활을 명예롭게 퇴직하고자 합니다. 하여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천상에 계신 부모님과 장인장모님께 삼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를 믿고 오늘날까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준 아내 김봉선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를 닮아 가는 아들 이장훈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는 1984년 8월 11일 대한민국 경찰 순경에 입직하여 오늘 총경에 이르기까지 유수와 같은 세월을 오직 수사형사 한길로만 걸어왔던 대한민국 형사였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존경하는 옛 동료 형사 여러분들이 참석 하였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 질풍노도와 같았던 그 때 우리는 열약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는 정의로운 형사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제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 일은 내가 스스로 하고, 남의 일도 내 일처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업무를 하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헌법정신에 입각한 경찰헌장을 중심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이제 형사생활을 끝마치고 다가오는 무술년 새해부터는 평범한 일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존경하는 동료여러분! 국민들은 우리 경찰에 양질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보다 나은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함으로서 존경받는 경찰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를 찬양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업무에 충실하시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고 나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에서 가치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고 행복이라고 합니다.
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무술년에는 여러분의 소원하는 꿈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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