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하되, 행동은 소처럼 신중하고 끈기 있게 하라!' 호랑이의 냉혹한 눈의 통찰과, 소처럼 성실하게 실천하는 모습을 비유한 말로, 매사에 조심하며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는 뜻이다.
호랑이는 무엇을 볼 때 옆으로 흘겨보거나, 고개만 돌려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전체를 돌면서 정면으로 직시 한다. 
소는 걸을 때 조급해 하지 않고, 결코 서두르거나,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고, 뚜벅뚜벅 한걸음씩 꾸준히 나간다. 
또한 호랑이는 먼 곳을 보지 않고, 너무 가까운 곳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먹이도 먼 곳에 있으면 소용이 없다. 또 몸 가까이 먹이가 있을 턱도 없다.
소는 달리는 법이 거의 없다. 한발 한발  힘주어가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느리다고 흉볼 일이 아니다. 너무 급히 달리다가 엉뚱한 곳에 이르는 어리석음 보다, 몇 곱 더 소가 현명할 지도 모른다. 
사람도 호랑이처럼 너무 먼 곳에 목표를 두지 말고, 너무 현실에 매여 있지도 말며, 소처럼 겸허하고 차분히 뚜벅뚜벅 앞으로 옮겨 가면서 오늘을 살았으면 한다.
고려중기의 대승(大僧)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스님(1158~1210)은, 호(아호雅號)를 목우자(牧牛子)라 했다. 소를 기르는 자, 즉, 불성(佛性)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스님은 고려 왕실의 잦은 정변에 연루돼 기강이 흐트러진 불교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그 분의 가르침은 고려 불교의 중흥을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눌스님의 부도(浮屠)가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데, 스님께서는 늘 우행호시(牛行虎視)하면서, 힘든 일과 울력(運力․雲力)에 앞장섰다고 적혀 있다. 부도는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탑이고,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는 일로, 결국 이 말은 예리한 눈을 간직한 채, 행동은 착실히 끈기 있게 나아간다는 뜻으로, 세상을 보는 눈은 날카롭고 반짝이어야 하지만, 행동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하는 것이 진정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호행우시는 '소걸음과 호랑이의 관찰'이란 의미로, 현실을 호랑이처럼 예리한 눈으로 보되, 행보는 소처럼 착실하고 끈기 있게 한다는 얘기다. 소는 도가(道家)에서는 은일(隱逸:속세를피하여숨어삶)과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 했고, 유가(儒家)에선 의(義)를 상징한다. 노자(老子)가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소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은 도가다운 전설이다. 그런가 하면 세종대왕이 효행(孝行)과 유교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편찬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엔 호랑이와 싸워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 죽은 소의 이야기가 나온다. 불가(佛家)에서는 백담사 등 사찰에 가보면 '심우도(尋牛圖)'를 볼 수가 있는데, 불자가 불성(佛性)을 깨닫는 수행의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다. 여기서 소는 불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는 곧 불성을 찾는다는 뜻이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생이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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