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논어(論語)의 가르침이다. 귀를 기우리다 보면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는 뜻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이해득실에 예민해지면서, 다툼과 갈등은 많아질 뿐 만 아니라, 소통과 어울림 그리고 행복지수는 크게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잘못된 것이다. 내 입술에 내 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도 모르고...'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을 줄이면 근심도 없어진다고 했다.
 주의를 기울여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경청(傾聽), 이 경청은 단순한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신뢰를 만들어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 한다는 것이다. 국어시간에 말하는 것 보다, 듣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듣기 좋은 말뿐만 아니라 듣기 거북한 쓴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냥 들어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뜻을 공유하고 동의하며,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청이라 하면 귀 기울여 듣는 경청(傾聽)을 떠 올리지만,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경청(敬聽)도 있다. 이렇듯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준다면, 상대방의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믿음과 신뢰할 수 있는 유대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청득심'의 유래는 중국 노(魯)나라 왕이 바닷새를 비궁(閟宮)안으로 데려와 술과 육해진미(陸海珍味)를 권하고, 풍악과 무희 등 융숭한 대접을 했지만, 바닷새는 어리둥절해 슬퍼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아 사흘 만에 죽었다는 일화(逸話)에서 전해 오고 있다. 장자(莊子)는 노나라 임금의 이야기를 통하여,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 태면 노나라 임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음악이 바닷새에게도 좋을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장자가 통찰한 것은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과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가식과 욕망에 근거한 이기심을 스스로 발견해서 개선하고자 하는 숭고한 의미와 비유하자면, 장자는 가식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소통할 때 천지 만물이 조화를 이루고 얼룩진 혼탁한 시대에 소통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소통(疏通)이란‘막힌 것을 터버린다는 소(疏)의 개념과, 사람 간에 연결을 뜻하는 통(通)이란 개념의 합성어다. 진정한 소통은 단순한 의사전달을 넘어서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실현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는 독일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다른 사람이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고나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병법(兵法)에만 의존하지 않고, 병사와 타인의 의견도 진심으로 경청할 줄 알았던 겸손한 자세와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에, 성웅(聖雄)이 되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