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낮은 곳으로부터 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하고, 아무리 높은 고대광실(高臺廣室)이라도 구조물의 무게를 받치기 위한 밑받침이 허술하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된다는 것이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절차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는 겸손해야 함을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스스로 자(自)는 ‘~로부터’란 뜻이다.
 출처는 공자(孔子)의 손자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에 나온다. ‘등고자비’는 먼 곳을 갈 때는 가까운 곳부터 간다는 뜻의 ‘행원자이(行遠自邇)’이라고도 하는데, ‘군자(君子)의 도(道)’란 이를테면 먼 곳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데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 무슨 일이든지 차근차근 ‘등고자비’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비슷한 가르침은 맹자(孟子)도 유학(儒學)의 도에 대한 추구는 아래서부터 단계적이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점진적인 성취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또한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물결을 보아야 하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더 쉽게 말한다. ‘아무리 아름드리나무도 붓털 같은 새싹에서 자라고, 높은 집도 삼태기 흙부터 쌓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 한다’고 했다. 
 안전 불감증으로 기초를 대비하지 않아 일어나는 사고는 말 나위 없이 인재(人災)라고 지탄을 받으며, 거기에 더해 벼락출세를 한 위인이나 급작스럽게 부(富)를 거머쥐게 된 졸부와 재벌2세 사회지도층 등이 저지르는 갑질 형태는 밑바닥 경험과 고생을 해서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하무인(眼下無人) 행세를 한다. 언제 어디서나 기본을 충실히 하면 높은 지위에 올라도 무너지지 않고 자만하지 않는다.
 화자(話者)는 사랑의 산정(山頂)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로부터 가파른 이 길을 거쳐, 산꼭대기인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에 도달하는 힘겨운 오르막길 경로를 겪어야 한다. 또한 등정코스가 웃음기가 사라지는 어려운 과정으로 묘사한다. 지난날 달콤한 사랑의 향기는 사라지고 끈적이는 땀과 거칠게 내쉬는 숨결만이 등정 길에서 두 연인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험난한 상황에 두 사람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길을 함께 올라가는 상대방의 위대한 사랑의 힘이다. 산정에 발걸음이 닿는 순간에 연인 서로는 위안이 되고, 나아가 사랑의 ‘등고자비’가 완결된다. 태산이 높고 크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낮은 곳부터 천천히 오르면 사랑의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관계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금부터 서서히 활용해 보자. 마지막에는 최고의 정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꿈과 사랑 등 인생사 자체가 ‘등고자비’ 과정의 연속이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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