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호마을 귀농인-조 병 래

깊은 가을을 맞이한 갈색 연 줄기들이 축축 쳐진 채 연꽃농장을 차지하고 있던 날 섬호마을로 귀농인 조병래 씨를 만나러 갔다. 마침 마을에 사는 주민이 연꽃농장을 찾아와 싱싱한 잎사귀도 없고 이쁜 연꽃들도 없는데 왜 이곳에 왔는지를 궁금해 했다. 필자는 연꽃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연꽃을 재배하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웃음으로 대신했다. 조병래 씨 부부는 마침 태양을 등지고 앉아 어제 캔 연근을 다듬고 있었다. 포크레인으로 연근을 캐다보니 온전한 연근보다 조각 난 연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애써 키운 연근들이 상처를 입고 망가져 있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근으로는 팔지 못하지만 차로 만들어 팔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고 하니 그동안 쏟은 노고가 모두 물거품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조경공부를 하면서 연꽃농사에 매력, 약3,000평의 논에 종근을 심다

2년 전에 귀농한 그는 몇 년 전 부산에서 학원을 운영하다가 뜻하지 않게 오랫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잘 나가던 학원에 대한 의욕도 상실되어 주말이면 고향인 남해를 자주 오가게 되었다. 중2 때 떠난 남해에 다시 돌아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조경공부를 시작했는데 특화작물인 연꽃농사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이론 공부에 매달려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 귀농하던 해부터 1000여 평의 진흙 논에 종근을 심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약 2000평의 논을 임대하여 연꽃을 심었다.  
작년에는 마침 태풍이 심해 바닷물이 유입되는 바람에 논에 물을 대서 갯물을 몇 번이나 헹궈내야 했다. 물을 넣어서 갯물빼기를 반복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다행히 연근은 수확할 수 있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제일 먼저 연꽃농장으로 달려가 연꽃을 살피며 정성을 쏟았을 초보 농부의 마음이 보름달만큼이나 환하게 읽혀진다. 연잎에 맺힌 새벽이슬이 수정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고 시상을 떠올리며 쓴 시들이 휴대폰에 오롯이 저장되어 있어 농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불심이 그리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가 품고 있는 정신에 심취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심기로 했는데 지금 돌이켜봐도 큰 고민 없이 선택한 결정에 후회가 없었다

사질토보다 훨씬 유리한 토질(진흙)에서 맛과 품질이 우수한 연근 재배

남해 바다를 접하고 있는 논이 진흙으로 돼 있는 이곳은 연꽃농사에 적합한 토질이었다. 대규모로 연꽃을 재배하는 창녕, 함양 같은 곳과 낙동강변 영산강변 금강변은 사질토여서 연근 맛도 다르고 질도 다르다. 하지만 진흙에는 좋은 성분이 가득 들어 있어 모든 면에서 사질토보다 우수한 편이다. 꽃은 6월 말에 피어서 8월 중순까지 절정에 이른다. 8월말에 꽃이 지면 연밥을 딸 수 있는데 올해는 연밥 따는 시기를 놓쳐 땅으로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연꽃과 연잎 판매를 성공적으로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재 판매는 알음알음하거나 인터넷을 통해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근 주문이 많이 되어 있었고 앞으로 3월까지 20일 단위로 캐서 팔 예정이었다.
지금은 연꽃농장으로 제 모습을 갖췄지만 이전에는 3천 평의 논이 휴경지였기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다보니 답이 보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주고 기본적인 농사비법도 알려주곤 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쌀농사를 짓기 힘들었던 땅에 많은 돈을 들여 종근을 심었을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음을 전했다. 촉이 달린 종근을 15센티미터 깊이로 모를 심듯 일일이 손으로 심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작업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이론만 가지고 시작한 연꽃재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연꽃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해서 농사를 잘 지을 수는 없었다. 농사의 기본을 잘 몰랐던 탓에 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아주 기초적인 물 빠짐과 가둠, 논의 특성도 잘 몰랐기에 농사지식이 없었던 그로서는 동네 사람들을 많이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귀농귀촌인들의 모임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

50가구로 이루어져 사는 이곳에는 귀농한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 2명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마을과 달리 이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예닐곱 명 정도가 되어 농촌을 살리는 조건으로는 좋은 편이었다. 남해에 귀농한 사람으로서는 그가 제일 처음으로 연꽃재배를 했고 고현에 사는 사람이 그 뒤를 이어 하고 있었다. 힘든 노동을 요하는 종근을 한 번 심으면 5년 동안은 스스로 번식을 하기에 매년 심지 않아도 된다. 재배 면적에서 군데군데 3분의 1씩만 남겨 놓으면 저절로 번식을 한다. 올해가 2년째니 앞으로 3년 동안은 그런 수고로움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믿는 그는 아침에 눈만 뜨면 연꽃농장으로 갈 정도로 일 년 동안은 오로지 농사만 생각했다. 지금은 이쪽저쪽 사회 쪽으로도 눈길을 돌리고 관심을 가지지만 그 당시에는 자나 깨나 연꽃뿐이었다.
요즘 귀농귀촌 모임을 하면서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네 문제를 고민하게 된 것은 귀농귀촌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농촌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받아들이려 하다 보니 은퇴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청년들을 귀농시키지 않고는 발전이 어렵다. 청년 귀농귀촌인들이 많아지도록 혜택도 주고 큰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농촌을 살려 보겠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무작정 귀농귀촌을 하는 것은 안 된다. 삶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일을 일 년 정도는 미리 체험을 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이론과 현장에서 부딪치는 일은 너무나 다르기에 몸으로 먼저 만나야 한다”

세 개의 밑그림 중 두 개는 이루어졌고 한 개는 아직 미지수

그는 처음 이 농사를 지으면서 세 가지 정도의 밑그림을 그렸다. “연잎이 자라는 5월부터 7월 까지 사람들이 연꽃과 잎을 보면서 자신을 정화시키고 즐거운 볼거리가 되기를 원했는데 그렇게 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생각했던 수입이 되니까 좋다. ‘체험관광형마을’로 조성해서 농촌 경제를 좀 더 살리고 싶다는 계획은 세웠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연꽃농장과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갯벌을 묶어서 체험마을을 만들고 싶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와서 보고 감탄하고 힐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연꽃농장에는 꽃과 잎을 떨군 누런 줄기들이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반기며 간신히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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