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던 어느 이동통신사의 광고 문구가 백세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제는 당연한 말이 되었다.
배고픔을 잊고, 성공을 위해서 부산으로 상경한 재부남해향우 1세들의 평균 연령이 70~80대.
대부분의 향우들은 2세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은퇴했지만 몇 몇은 아직까지도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바로 ㈜대강선재 강정석 대표이사.
HD피막제, 볼트, 너트재료, 신선, 직선, 각종 철선 가공 및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대강선재 는 3개월 전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인 생곡 산단에 1만 2천㎡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강 대표가 ㈜대강선재를 창업한지 딱 31년 만이다.

 ▲창선 상신이 고향
창선 상신이 고향인 강 대표는 창선초· 중· 고를 나와 동아대학교 야간부 상경대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 상 중퇴했다.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인지 그는 교단에 올라서서 친구들 앞에서 말 한 마디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이었지만 근면, 성실하고 마음먹은 일에 대한 집념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맡은 일은 반드시 해 내야 직성이 풀렸다.

▲대동벽지에서 14년, 영업의 노하우를 배우다
부산 군수기지사령부에서 군 생활을 했던 강 대표는 대동벽지 창업자인 강형석 사촌형 집에 자주 인사드리러 갔었는데 1969년 3월, 사촌 형으로부터 내일부터 당장 대동벽지에 근무하라는 제의받고 이후 14년 간 근무했다.
당시 그는 소방공무원에 합격한 상태였는데 그때 급여가 8천원인 공무원보다는 사촌 형 밑에서 일을 배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하고 제대 3개월은 앞두고 바로 출근했다.
시골 촌놈으로 영업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처음에는 대금을 미루며 거짓말만 일삼는 거래처를 상대하기가 많이 벅차고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다 대동벽지 전무로 일본 유학파 출신이 발령받아 오면서 그를 따라 다니면서 영업을 제대로 배워 3년 뒤에는 최고의 영업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광주, 대구 등 새로운 대동벽지 지사가 문을 열 때마다 강 대표가 가서 자리 잡을 동안 업무를 볼 정도로 영업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한 번 한다고 하면 끝까지 해 내는 그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 영업을 나갈 때도 차 시간까지 계산해서 계획을 세워 남들이 14일 만에 할 일을 그는 집중해서 일주일 만에 해 치웠고, 한 달 급여보다 많았던 출장비는 진주에서 공부하던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아낌없이 썼다고 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부모도 고마운 분이지만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시골 촌놈을 데려다 일을 시켜주고 총무, 영업 일을 알게 해 준 사촌 형은 내 인생의 은인과 같다. 첫 사업실패하고 돈을 구할 때가 없었을 때, 대금결재에 어려움이 있을 때도 항상 많이 도와 줬다”고 말한 강 대표는 지금은 고인이 된 사촌형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다시 일어서다
사촌형이 조카에게 사업을 승계하고 물러나자 강 대표는 자기 사업을 하고자 영도에서 선박수리업체인 대광공업사를 개업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배 수리도중 용접 불씨가 튀어 화재가 발생해 큰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었다.
사업실패 후, 4년 간 공백 기간은 그의 인생에서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1987년 8월, 대강선재로 다시 재기했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신평, 장림에서 작은 평수로 공장을 운영하다가 녹산, 화전산단으로 이전, 3개원 전에 지금의 생곡산단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10년 동안 그는 총무, 영업, 관리 등 1인 5역을 담당하며 새벽 4시 일어나 밤 10시 넘어서까지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는 철강 자재를 구입하기 어려운 시대로 포철의 생산량을 배분 받아 선 결제, 후 주문 방식이었기 때문에 항상 경영난에 시달렸다. 또, 사회 규모가 커지고 자동차 사업이 활발해 져 수요가 많아 원자재가 늘 부족했다.
그 이후 수입자유화가 되면서 중국자재가 들어오면서 좀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또, 엘지 창원공장이 들어서면서 냉장고, 세탁기에 들어가는 부품의 물량을 받게 되자 그 때부터 공장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규모도 커지기 시작했으며 1년 전 부터는 침대에 들어가는 스프링 제품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성공할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고향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강 대표는 “부모도움 없이 자수성가 한 사람들, 가진 거라고는 뭐가 있겠는가? 성공할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인내심을 갖고 부지런하면 뭐가 되도 꼭 이룬다고 생각한다. 내성적이어서 남 앞에 나서서 말도 못하던 나도 최고의 영업실적도 올려봤고, 사업실패로 친구들까지 등을 돌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가 노력하니 다시 회사를 세우고, 오늘까지 오게 됐다”고 말하고 “청년 실업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세상살이가 힘들다지만 우리 자식들은 배고픔 모르고 힘든 일도 하지 않고 컸기 때문에 사실 절박함이나 절심함이 우리와 같지 않다고 본다. 진심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 했는데 마냥 실패만 한다는 것은 잊을 수 없다. 성공은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나온다고 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살피고 챙겨서 미래를 설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