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바느질 길쌈으로 혼자 키워야만했던 7남매 그때의 정신력이 지금 대청마루에 꼿꼿이 앉게 하는 힘
삯바느질 길쌈으로 혼자 키워야만했던 7남매 그때의 정신력이 지금 대청마루에 꼿꼿이 앉게 하는 힘
  • 박서정 기자
  • 승인 2017.10.24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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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마을 윤봉악(102세)할머니

얼마 전 남해에서 제일 고령인 106세 할머니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생활하시다 돌아가셨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1세기를 넘기고 몇 년을 더 사셨다는 것은 남다른 건강비결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요즘은 발달된 의료혜택과 좋은 식품으로 인해 100세를 훌쩍 넘기는 어른들이 많아 놀랄 일은 아니지만 지금껏 밭일을 하시고 병원 가는 일도 없었다는 말은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깔끔한 성격의 할머니 두 시간 정도를 대청마루에 꼿꼿이 앉아

‘어떤 할머니일까’를 그리며 신전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들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윤봉악 할머니 댁’을 물으니 삼거리 파란 대문집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집에는 큰며느리와 할머니의 조카 두 분만 있었고 할머니는 마을회관에 가셨다고 했다. 정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회관 문을 여니 동네 할머니들이 열 명 남짓 모여서 치매에 좋다는 고스톱을 치고 계셨다. 그 속에 할머니가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윤봉악 할머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나를 바라본다. 마침 교회에서 준 간식을 드시고 있던 할머니는 고운 얼굴로 살짝 웃으시며 반겼다.
회관에서 나눠 준 빵을 잊지 않고 손수레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 후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온다는 말을 미리 하지도 않았는데 분홍색 티에 옥색 조끼를 입고 계셔서 평소에도 깔끔한 성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도 깨끗하고 예쁜 꽃신이었다. 시골 일을 조금만 하고 사신 것처럼 굳은살 없는 손이 고와 보여 70대 할머니 손 같다고 했더니 또 웃으신다. 귀는 듣는 게 좀 불편하다고 했지만 조금 소리를 키워 질문을 하니 다 알아듣고 답도 잘하셨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같이 살고 있는 큰아들이 마침 바깥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대청마루에는 필자를 비롯해 할머니 옆으로 5명이 에워싸고 앉아 주인공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 응원했다.
할아버지 50세에 세상을 떠나시고 삯바느질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1916년도에 태어나셨으며 18세에 결혼을 하여 5남 2녀를 두셨다. 할아버지는 잦은 병치레를 하시며 사시다가 50세에 세상을 떠나시고 할머니 혼자 힘으로 자식을 길러내셨다. 할아버지가 생활을 책임 못 지셔서 밤낮으로 남의 집 삯바느질을 하고 길쌈을 하고 마을에 잔치가 있으면 술을 담아주고 밥을 해 주면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아버지들끼리 서로 중매를 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거의 다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니 싫다고 도리질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병환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꾸려 나가야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전답이 없는 관계로 겪어야했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조카들은 “친정어머니를 닮은 고모님이 영특해서 집안을 잘 꾸렸다”고 할머니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셨다.
할머니는 고기 종류 이외의 음식은 거의 다 좋아하는데 특히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소식을 하는 편이었다. 언제나 근면하고 부지런한 성격으로 인해 밭에서도 종일 일하시고 집에서도 다듬고 묶는 일을 멈추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여태껏 다리 한 번 아픈 적 없었는데 엊그저께 마루에서 넘어져 오른쪽 무릎에 약간 충격이 가해져 지금은 조금 불편을 겪고 있는 정도였다. 그동안 면에서 준 지팡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지냈는데 오늘 처음으로 보행용 손수레를 밀고 마을회관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은 하나도 없고 마을회관에서 보내는 게 유일한 낙
아침 10시 30분쯤 회관에 가셔서 시간을 보내다 5시쯤에 집에 들어오시는데 이번에 다쳐서 큰며느리는 되도록 집에서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큰며느리는 71세였고 큰아들은 79세였다. 옆에 앉아있던 조카들(82세, 77세)은 “큰며느리와 큰아들이 아주 편하게 잘해주고 음식도 잘해드려서 장수를 하는 것”이라고 산증인처럼 의미 있는 한마디를 보탰다.
할머니께 드시고 싶은 게 있느냐고 여쭸더니 아무것도 없단다. 가지고 싶은 걸 여쭸더니 또 전혀 없단다. 반지는 끼고 싶지 않냐고 하면서 내 손에 있던 반지를 빼서 끼워 드려 보았다. 손가락이 가늘어서 좀 헐렁했지만 드리고 싶어 “할머니 드릴까요” 했더니, 남의 것을 받으면 되겠냐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웃으신다. 놀러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오로지 ‘마을회관’뿐이란다. 그곳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고 편히 쉴 수도 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하신다. 물론 집에서도 맛있는 것을 먹고 편히 쉴 수도 있지만 그런 외출을 즐거운 나들이로 여겼다. 60대까지만 해도 여동생이 살고 있는 일본을 오가고 70대에는 제주도 여행도 다녔는데 그 이후로는 자식들 집 외에는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으신 것 같았다. 멀미도 안하고 이동 중에 불편함도 느끼지 않지만 지금은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하신다.
할머니께 피부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고 하니까 고맙다고 하신다. 하루에 거울을 몇 번 보는지를 여쭸더니 세수하고 한 번이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아구 얼굴이 얄궂다”라는 말이 새어 나온다고 하셔서 다시 예쁘다는 말을 전하고 피부도 고우시다고 얼굴을 만져 드렸다. 마을회관에서 할머니가 제일 예뻤다고 하니 “고맙다, 기분이 좋다”며 또 웃으신다. 할머니는 그 옛날 무슨 걱정이 있어도 잘 참고 견뎌냈을 것 같았다. 자식을 7명 키우면서 왜 어렵고 힘든 일이 없었겠는가마는 그래도 총명하고 지혜롭게 잘 이겨냈을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할머니께 힘든 일이 없었냐고 했더니 생각도 해보지 않고 바로 없었단다. 아마 살아오면서 기억이 희미해지고 퇴색해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앉아 있는 맞은편 기둥에 마침 달력이 걸려 있었다. 글자도 다 아신다고 해서 손으로 짚으며 글자와 숫자를 읽어 보라고 했다. 숫자는 잘 읽는데 글자는 특이하게 읽으셨다. ‘남’이라는 글자를 ‘나’자에 음(ㅁ)이 있다고 하여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다. 또 셈하는 것도 놀랄 정도로 잘했다. “천 원을 들고 마트에 가서 오백 원짜리 우유를 사면 얼마를 받아와야 하냐”고 했더니 주저 없이 “오백 원”이라고 해서 또 박수를 쳐 드렸다. 지금도 여전히 머리 회전이 빨라서 생각하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며 또 박수를 쳤다. 할머니 눈은 칭찬받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더욱 동그랗게 되셨다.

매사에 긍정적인 삶과 양손을 열심히 움직이며 지금껏 사신 게 장수의 비결

할머니는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고 손을 열심히 움직이며 사셨고 생각이 긍정적이셨다. 그 옛날 삯바느질 길쌈 등을 주야로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밭일을 하시고 수족을 열심히 움직이시기에 건강도 잘 유지된 것 같았고 온전한 정신도 잘 붙들고 계신 것 같았다. ‘손 활동이 뇌와 연결되어 있어 양손을 많이 움직일수록 뇌세포는 기능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도 같았다. 옆에 있던 윤영섭 조카(82세)는 “아버지 형제들이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이제는 고모님 혼자만 남았기에 언제나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진심을 전한다. 옛날부터 몸을 정갈하게 다듬고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할머니는 피곤하다는 말씀 한 마디 없이 계속 꼿꼿이 앉아 계셨다. ‘혼자 힘으로 자식을 잘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모성애를 한시도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앉은 자세에서 계속 몸짓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주저앉으면 우리 집은 끝장이다’ 하는 심정으로 버터오신 정신적인 힘이 지금도 이 대청마루에 꼿꼿이 앉아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여겨진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는 그 진한 강박관념,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윤봉악 할머니를 놓지 않는 단단한 동아줄이었다. 할머니의 눈빛은 50대 이전과 이후를 절대 놓을 수 없음을 계속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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