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어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어 독서하기에 좋다’는 뜻으로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가을은 아주 청명하고 선선한 좋은 날씨임엔 틀림없다. ‘하늘도 높고 말(馬)도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이런 가을을 두고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여, 그래서 ‘등화가친’의 계절이란 말이 나온다.
중국 당(唐)나라때 대문학가이며 철학가인 한유(韓愈)에게 창(昶)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서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라는 시(詩)를 지었는데, 여기에 등화가친의 직접적인 유래가 되는 비유적인 표현이 나온다. ‘시추적우제(時秋積雨霽) 바야흐로 가을, 장마도 걷히고, 신량입교허(新凉入郊墟) 들판에는 서늘한 바람,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 이제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간편가서권(簡編可舒券)이라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으리.’ 그리고 ‘나무가 둥글게 혹은 모나게 깎이는 것은 단지 목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글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달려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글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지만, 게으름을 피우면 뱃속이 텅 비게 된다. 배움의 이치란 태어났을 때엔 누구나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같지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 들어가는 문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도 처음에는 같았다고 했다’…중략
유난히 가을하늘은 파랗고 높아 보인다. 숲이 우거진 나무에서 매미소리가 신선의 풍류를 듣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즐겁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다. 처서(處暑)가 지나니,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물러가고 요즘 같은 초가을이 ‘등화가친’의 최적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조상들은 이때가 되면 희미한 등불을 가까이 두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곤 했다. 지금은 전기 시설이 완벽하여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기 취향에 맞게 조절하면서 눈에 알맞은 조명을 밝힐 수 있지만, 옛날에는 등잔불이 없을 반때는 형설지공螢雪之功(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었고, 그 후 등잔이 생겨 석유를 넣어 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쌍심지등잔불에 바느질을 하고 다듬이질을 하시던 생각이 나며, 어렴풋이 밤이 늦도록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겹게 이야기 나누는 그 모습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독서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힘이 되고 삶의 길잡이가 된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과 옛 지성(知性) 퇴계(退溪), 율곡(栗谷), 다산(茶山)을 만날 수 있기에 ‘서중유지락(書中有至樂) 즉, 책속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구슬도 갈고 닦아야 빛이 나듯, 독서로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 조화된 인격과 균형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취미나 지식을 쌓기 위해서나, 교양이나 수양을 위해서든, 책을 읽는 것을 멀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좋은 책을 읽음으로서 우리 마음을 살찌우고 마음의 밭을 기름지게 하여 ‘내적결실(內的結實)’을 풍성하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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