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마당을 밟고 있는 시간에 열려 있는 키 작은 철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집은 역사가 오래 되어 외관상으로 노후화가 되었지만 작가의 손을 거친 집은 예술가의 영혼을 먹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승모 조각가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은 상록수처럼, 울긋불긋 단풍처럼, 자귀나무처럼 다양한 의미를 분출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도 전에 마당의 조형물에 푹 빠진 탓에 오늘 만날 주인공을 사람이 아닌 작품 쪽으로 돌리고 싶었다.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는 선생님과 마당에 놓인 긴 테이블에 앉아 남해 생활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에 있는 식물도 식물이지만 마당에 놓여 있는 조형물들이 독특해서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선생님 여기 있는 이 작품은 청동으로 만든 것 같은데 부식이 좀 됐네요. 이것을 보자마자 층계를 밟고 오르고 싶은데 어떤 의미를 두었나요? “네 청동인 브론즈로 만들었고요. 브론즈는 2~3년만 되면 부식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기에 제목은 표기를 안했지만 5년 전에 갑자기 우리가 살아가는, 살아내는 삶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제작을 하게 되었죠. 나름대로 ‘삶의 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계단 맨 꼭대기에 있는 이것은 ‘이 뭣고’라는 글자입니다. 스님들이 던지던 화두를 제 삶에도 적용시키며 이렇게 조형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만든 조형물에 그런 글자가 숨어 있다는 것은 아마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세심하게 살피며 숨은 이야기도 잘 캐내는 나조차도 저건 문양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묻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굳이 설명을 안 하는데 먼저 관심을 가져서 특별히 알려준 것이라고 했다.
마당에서 조형물을 보면서 선생님의 여러 작품들을 밀도 있게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작업실은 여기에서 조금 이동을 해야 해서 아내 작업실에 보관된 사진으로 그동안의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다.
서양화가(하미경)인, 아내의 작업실 마당에 있는 하트로 된 돌 조형물이 의미심장하게 보여 자꾸만 궁금증이 일었다.
그 작품은 아파트의 조형물을 주문제작하면서 똑같은 모양으로 작은 것도 하나 더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석재가 만나 조화로운 융합을 이루게 했고 돌 속에 두 개의 하트를 만들어 서로의 사랑이 통하게 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사랑은 소중하기에 언제나 이렇게 교류하게 해야 한단다.
마당에서 몇 개의 조형물을 보면서 조작가가 평소에 추구했던 작품의 성향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주로 쓰는 소재는 여기 있는 것과 같은 스틸과 청동인 브론즈 그리고 돌이었다.
그 재료에 여러 공구를 이용해 깎고 쪼고 쓸고 다듬어 조형물에 입체적인 글자를 새기는 ‘시조각’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계셨다. 이 삶의 계단도 시조각 개념이었다. 조각가는 작품 속에 언제나 시문을 넣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정말 개성적인 발명품이 조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되고 있었다.
이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선배가 하는 조각을 보고 자극을 받아 이 길을 들어섰지만 그런 계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 시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술은 하나로 통하니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작가가 문학성을 겸비한 분이어서인지 처음부터 조각만 하는 사람과는 좀 다른 느낌이 더 있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문인들의 시를 돌에 새기는 시비는 봤어도 시문을 조각품 속에 넣어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기에 무척 새로웠다.
이작가는 자신이 시조각의 창시자이며 지금도 그런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찍은 작품 사진들을 펼쳐놓고 작가는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울산롯데호텔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지금은 정문 왼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쓴 ‘비’에 관한 시를 이렇게 쌍으로 새겨서 ‘빗방울 소나타’로 명명했습니다.
여기 빗방울은 우리 인간 즉 삶의 모습입니다. 2001년도에 제작했는데 이게 바로 제 시조각의 시초였습니다” 그 작품은 조형미를 잘 이뤘고 안정감도 있어보였다. 빗방울이 튕겨나가는 느낌도 생생하게 살려 빗방울을 손으로 한 방울 잡고 싶었다. 시조각의 모태라 하니 작가 입장에서는 다른 작품보다 더 애착이 갈 것 같았다.
사진을 보는 중에 사람의 두상이 나온다. 온통 글자로 모형을 만들었다. 평소에 애송하는 김춘수 님의 시, ‘꽃’이었다. 동선(銅線)으로 연결해 완전한 구로 표현했다. 인체에다 시어를 심게 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대학에서 ‘인체’를 전공했기에 그것을 활용하여 작품에 많이 응용했단다. 무생물에 시어를 담으면 생명을 얻는 것 같은 희열이 느껴져 서덕출의 ‘봄편지’도 동선으로 작품을 형상화해 놓았단다. 작품은 모두 똑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모두 독특하게 조각하여 놀랍기 그지없었다. 한마디로 개성의 만찬이었다.
작가는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로댕을 존경한단다. 로댕의 인체는 생명력이 있고 작품 기법에 감동이 있고 고전적인 작가이지만 충분히 매료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인데 인체의 본질과 본성을 잘 나타냈기에 존경하고 따른단다. 국내에서는 초기 조각가인 권진규 선생님을 존경하는데, 그분의 작품은 생략 되었고 힘도 넘쳐서 좋단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땀의 결실로 이루어낸’이라는 수식어로는 뭔가 많이 부족할 듯했다. 그보다 더한 어떤 단어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인고의 강을 수없이 건넌 결정체다운 결정체’ 이것도 부족한 표현일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3D업종 중의 하나일 수도 있는 이 직업에 종사하면서 거대한 조형물을 여럿 출산했는데도 외관상으로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도 혹 보이지 않는 곳에 탈이 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직업에서 오는 어려움과 건강에 대해 질문했더니, 돌가루와 분진 소음 등으로 귀마개와 보안경을 착용해야 하며 수많은 작업공구를 다뤄야하기에 힘에 부칠 정도로 체력소모가 많이 된단다. 초창기에는 보안경을 끼지 않고 귀마개도 하지 않고 작업을 하다가 눈 건강도 나빠졌고 청력도 떨어진 게 사실이란다. 하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으니 괜찮다고 했다.
다행스러웠다. 꿈을 이룬 훌륭한 사람들의 신체는 대부분 직업병으로 망가지고 마모가 되어 일단 외관상으로는 흉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개의치 않고 성과를 이루는 데만 역점을 두기에 오히려 영광스런 상처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이승모 조각가는 건강은 조금 잃었지만 이룬 업적을 봤을 때 그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해 세상을 향해 돌팔매질도 하고 세상을 자신 속으로 햇살처럼 끌어들이기도 하면서 승화시킨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서 하루 만에 다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찾아온 남해가 마음에 들어 조금도 주저함 없이 둥지를 틀었고 앞으로도 쭉 남해에 정착할 것이라는 작가의 얼굴은 생기가 돌았다. 남해를 사랑하는 작가에게 혹 남해를 위해 멋진 조형물을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한 가지 예로 우리 지역에도 서포 김만중 선생이 계시는데 그 분의 시로 시조각을 해 볼 의향은 없으신지를 물었다.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기회가 되면 구상을 구체적으로 하여 꼭 시조각을 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생각하는 로댕’을 좋아하시니 그런 일이 머잖아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만중 유배문학관 앞에 시조각이 서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해바라기 같은 웃음이 지어졌다.
남해미술협회 회장으로 계시는 작가는 이번에 출항 작가들과 뜻을 모아 9월 30일부터 한 달간 ‘원예예술촌전시장’에서 전시회를 열 것이라며 우리 신문에 공고글을 부탁했다.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생겨 처음으로 ‘회장님’이라고 불러드렸다. 회장으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협회를 잘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함을, 대화를 나누는 중에 계속 읽혀졌다. 선생님을 만난 이 시간 이후부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시조각하면 이승모 조각가가 재빨리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는 현장감 있는 작업실에서 다시 한 번 더 뵙기를 바라며 나오는데 익어가는 대추가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아름다운 예술가가 사는 아름다운 집이어서 좋은 예술을 수시로 섭취한 자연이 오히려 인간의 덕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집 대추보다 몸빛이 좋은 대추를 보고 있는데 익으면 따먹으러 오라는 주인의 애정 어린 말이 들린다. 시조각 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인사말이서 돌아서는 발뒤꿈치에 계속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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