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평안 지켜온 아홉 마리 용의 자취, 숨겨진 전설
군내 3.1운동 불 지핀 애국심과 향학열로 가득한 곳
기자가 설천 문항마을을 찾았던 날, 문항마을 앞 강진만은 바다라기보다 차라리 호수에 가깝도록 평안하고 잔잔하다. 잔잔한 물결 사이로 키 큰 해송 여러그루가 뭉쳐 둥근 공처럼 보이는 ‘도래섬’이 눈에 들어온다.
문항마을서 전해져 오는 아홉 마리 용의 전설 중 도래섬은 그 전설의 일부를 꿰차고 있기도 하다. 이 마을에는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지켜주던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그 용들이 승천하다 그 중 한 마리의 용이 강진만에 둥글게 앉은 도래섬을 보고 여의주로 착각해 승천하던 발길을 돌려 다시 내려왔다는 섬이 바로 도래섬이다.
그 옆으로는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며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상장도와 하장도가 형제처럼 강진만을 수놓고 있다.
군내 아니 전국에서도 이미 전국구 스타급 명성을 얻고 있는 설천면 문항어촌체험마을은 그 명성에 걸맞게 풍부한 해산물과 다양한 체험거리로 매년 수많은 체험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마음을 매료시킨다. 다녀간 이들은 너무 많지만 이 마을에 전해져 오는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마을 ‘터줏대감’ 격인 어르신들조차도 구전으로 희미하게 전해지는 이야기 일부만을 기억하고 있고 그 기억을 짜맞춰야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야기의 조각을 맞추는데 도움을 주신 분은 이 마을 주민인 박충섭 어르신과 정관표 어르신이다.
아홉 마리 용의 이야기는 우선 문항마을의 생김과 닮아있다. 마을을 둘러싼 산세와 지형이 마치 긴 몸의 용 아홉 마리가 승천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고, 그래서인지 이 마을을 예전에는 ‘구룡포(九龍浦)’라고도 불리었다.
실제 문항마을 주변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면 크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대국산, 금음산, 구두산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이 산들의 주요 골짜기가 강진만 쪽으로 뻗어 내려가며 그 사이사이 문항마을을 포함한 인근 마을들이 자리잡은 형상이다. 강진만으로 뻗어가는 골짜기와 산세의 형상이 마치 아홉 마리 용이 강진만으로 치닫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설명이다.
각 산줄기와 골짜기도 제각각 이름이 있지만 문항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산등성이인 ‘왜망등’은 어른들의 말씀에는 임진왜란때 쳐들어온 ‘왜군들이 망한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 어른들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아홉 마리 용이 마을을 지켜줬기에 왜란에도 마을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 왔다고 한다.
그리 오래된 기억이 아닌 박충섭 어르신의 어릴 적 기억에도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은 담겨있다. 박 어르신이 열 살 남짓할 무려 누나가 윗동로 시집 갔을 때 그 마을에서 누나를 ‘구룡댁’, ‘구릉댁’이라고 불렀단다. 그 때 즈음이면 시집오기전 살던 동네 이름에 ‘댁’을 붙여 부르던 시절인 만큼 문항마을이 오래전부터 어르신들에게는 ‘구룡포’라고 불린 탓에 그리 부르지 않았나 싶다는 것이 박 어르신의 회억(回憶)이다.
지금 문항마을 앞 도래섬 북쪽으로 옥동방파제가 있는 곳에 길게 뻗어나온 능선도 원래는 바다로 뻗어가며 승천하려던 용이 도래섬을 여의주로 착각해 급하게 발길을 돌리며 생긴 능선이라는 전설풀이도 있다.
한 마리 용 이야기도 벅찬게 전설인데 아홉 마리의 용 전설을 안고 있는 문항마을은 예부터 관료와 학자들이 많이 나는 마을로 이름이 자자하다. 박충섭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이 마을 어른들이 워낙 아이들 교육에 열의가 높으셨던 모양이라. 내 어릴때도 줄곧 들은 말이 ‘똥묻은 주머니를 팔아서라도 자식 교육은 시키야제’라는 말이었으니. 또 마을주민들이 지금 회관자리에 서당 지을라고 마을앞에 상장도, 하장도를 팔았다 칼 정도니 교육열이 아마도 남해군에서는 최고이지 싶네”라고 하셨다.
또 문항마을은 우리 남해군의 3.1 만세운동이 처음으로 일었던 곳이기도 하다. 학구열도 높았지만 애국심이나 민족성도 그만큼 뜨거웠던 곳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지금도 마을 회관 입구 바로 위에는 서당 상량문이 적힌 마룻대가 걸려있는데 일제강점기 여느 기록에나 담겨야 했던 일황의 연호가 없이 상량연월일이 적혀 있다.
이렇게 강한 민족성과 뜨거운 학구열 탓에 지금의 문항이라는 마을이름도 ‘구룡’이라는 옛 지명이 있지만 ‘마을 골목마다 글읽는 소리가 가득한 곳’이라고 해 ‘문항(文巷)’이라고 바꿨다는 설명도 있었다.
마을의 안녕과 뜨거운 학구열 탓에 이름있는 학자들이 많은 마을의 연원을 구룡, 아홉 마리 용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라 믿고 있는 마을.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을 담은 이 곳에서는 내일 바다내음 가득 품은 참굴을 실컷 맛볼 수 있는 설천참굴축제가 열린다.
▲도움 주신 분-문항마을 박충섭, 정관표 씨
/김인규 기자 kig2486@namhae.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