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보(步,걸음)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보고 겁쟁이라고 비웃는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좀 낫고 덜한 차이는 있어도 크게 보면 서로 비슷비슷함을 일컫는 말로,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도토리 키 재기’, ‘적반하장’ 등과 비슷한 용례로 쓰인다.
중국춘추시대 천하를 주유(周遊)하던 맹자가 어느 날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알현했다. 혜왕은 “선생께서 먼 길에 여기까지 오신걸 보니, 이 나라에 어떤 도움이나 이익이 될 만한 일을 가지고 오셨겠죠?”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폐하가 싸우기를 좋아하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터에서 갑옷과 투구를 버리고 도망친 병사가 있었답니다. 50걸음을 도망친 자가 100걸음을 먼저 도망친 자에게 비겁하다고 욕을 했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혜왕은 “그건 이상하군요. 도망친 것은 둘 다 똑같은데…”라고 답하자 이같은 답을 교묘히 유도해 낸 맹자는 그제서야 “그렇습니다. 전하의 정치도 이웃나라와 비교해 월등한 정치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어느 정도 잘 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의 힘이 작용하지 않은 것이니까요”라며 결국 혜왕을 설득시키고 말았다. 맹자의 양해왕편(梁惠王編)에 이 일화가 실려 있다.
자신의 결점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 단점만 비판하는 내용의 ‘눈곱이 코딱지 비웃는다’는 유머로 받아들인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어의 ‘원숭이는 자기 엉덩이는 볼 수 없고, 남의 엉덩이만 바라본다’, ‘빨갛게 까진 엉덩이를 비웃는 원숭이’ 등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세계의 속담도 다양하다.
조선 인조 때 시평가(詩評家)인 홍만종(洪萬宗)의 속담집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매를 들다)’에 대한 풀이는,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화를 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처럼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거나 미안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로 통한다.
오십보백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달아난 병사를 비웃는 것은 잘못의 크기만 다를 뿐, 잘못한 차이는 같다는 뜻이다. 전쟁터에서의 병사의 이야기는, 결국 맹자와 혜왕의 주고받은 간결한 대화에서, 근본적으로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큰 의미를 알려주며, 우리가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은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준다는 속뜻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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