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당산 난포현에서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조세를 배로 실어 보낼 때 비자당산의 사당에서 제를 지냈다. 그리고 바다에 나와 해신이 된 죽은 왕자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 이 풍속은 당집 근처 무속인들에 의해 6.25전쟁 이후까지 지속되었지만 무속인들이 이주 당하고 당집도 없어지면서 제사도 없어졌다고 한다.

장전마을 앞 북서쪽에 있는 배를 엎어 놓은 모양의 작은 동산이 비자당산이다.
40여 년 전만 해도 비자나무가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베어지고 몇 그루만 남아있다. 옛날에 동산 꼭대기에 당집이 있었고 거기에 깊은 우물이 있었으나 근년에 와서 메워져 없어졌다.
아주 먼 옛날 임금님의 아들이 이곳에 와서 살았다. 이 왕자는 옛날 포상팔국 중 한 나라의 왕자였거나 신라 왕자였다 한다. 왕을 대신하여 이 곳을 방문하였다가 살기가 너무 좋고 아름다워 눌러앉아 집을 짓고 살다가 죽었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 왕자를 위하여 당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왕자가 죽어 용왕이 되었거나 바다를 지키는 해신이 되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40년 전만 해도 당상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구전에 의하면 옛날에는 각종 선박이 이곳에 기착하여 용신제를 지내야만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광복 후까지도 당밑 마을에 무속인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조선조 허목(許穆)의 ‘미수기언’ 제63권 습유편에 나오는 비자당산과 신라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사(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해현(南海縣) 동편 20리 해안에 비자나무만 있는 산이 있는데, 그 위에 신사(神祠)가 있다. 세상에서 ‘신라(新羅) 때 어느 왕자가 섬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죽어서 신(神)이 되었는데 남해에서 그를 제사 지내 준다.’라고 전한다. 그래서 그 신을 맞이하여 대접하는 사(詞)를 짓는다.(南海縣東二十里海岸。山木皆榧。上有神祠。世傳古有新羅王子入海島不返。死而爲神。海中祀之。作迎享神詞)
나는 용을 타고서 비취 날개 펼치고 / 駕飛龍兮張翠羽
거센 파도 능멸히 보며 의기가 양양하다 / 凌洪波兮揚靈
의기가 양양하니 그 기상 호탕하구나 / 揚靈兮浩蕩
끝없는 시야 밖엔 구름만이 침침하다 / 望不極兮雲冥冥
우수수 낙엽 지니 그 풍경 쓸쓸한데 / 木落蕭蕭兮風景寒
바다에는 처량하게 부슬비 내리네 / 海雨凄凄兮颯而霏霏
영수를 맞으려고 돌아감도 잊고서 / 留靈脩兮澹忘歸
한 해가 저무니 한숨만 더해진다 / 歲旣晏兮增噓唏
깨끗한 나의 행동 진실됨이나 / 謇余修潔兮信
애오라지 편안함도 근심이로다 / 要聊容與兮愁
이내 마음 초초하여 눈물 씻노니 / 予心悄悄兮攬涕
그 누가 물가에 머물렀는가 / 羌誰留兮水渚
벽려 옷 입고서 여라 띠 두르고 / 被薜荔兮帶女蘿
옥 패물 차고서 우두커니 서 있노라 / 結瓊佩兮延佇
교교한 감정이 긴 한숨되고 / 情皎皎兮長太息
신령이 오는 양상 삽연하구나 / 靈之來兮颯然
백신이 어울려 함께 임하니 / 百神翳兮竝御
빛나는 듯 처량한 듯 눈물 흐르네 / 剡剡悽悽兮涕漣漣
끊임없는 생각에 오락가락 하면서 / 愁夷猶兮懷未已
패물도 버리고 모든 시름 떨쳐버리리 / 捐余佩兮遺所思
둥둥 북을 치고 즐거워하며 / 坎坎擊鼓兮娛嬉
공자를 바라는 마음 변치 않겠네 / 望公子兮無違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