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이 쌓아 놓은 알의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몹시 아슬아슬한 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의미로, 둥근 달걀을 쌓으면 그냥 무너져 내려 깨지는 것처럼, 그 정도로 위태위태한 상황을 의미한다. 중국 사기(史記) 범저열전(范雎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단면(斷面)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한지 오래고 국회의 기능도 멈춘 듯하다. 국제 신인도가 하락되는 우려 속에 한국경제가 최순실 게이트로 휘청거리고 있다. 국정컨트롤 타워가 실종되고 국정 혼란이 과중되며, 촛불과 태극기시위로 진영이 나뉘어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국민만 바라보고 민생을 챙기겠다던 여야정치인들은 어디 갔는지? 이런 와중에 여야(與野)가 대권 출사표로 각개전투(各個戰鬪)하는 모습이 정말 가관(可觀)이다.
중국 전국시대에는 세객(說客)들이 많았다. 능수능란한 언변(言辯)으로 출세하려는 무리들이다. 이들 중 모사(謀士)와 책사(策士)가 있었는데, 이들을 종횡가(縱橫家)라고 불렀다. 종횡가 중에 범저(范雎)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경은 없었지만,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최선을 다했다. 제(齊)나라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수행하게 되었다. 제나라에 간 수가는 외교사절로서 양왕(襄王)을 만나 외교를 펼쳤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때 범저가 나서서 양왕과 제나라 대신들에게 현란한 언변과 논리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수가는 시기심이 발동하여, 위나라로 돌아온 후, 첩자로 누명을 씌워 갖은 고문을 다하고, 거적대기에 둘둘 말아 변소에 버려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그곳을 벗어나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몸을 숨기고, 이름도 장록(長祿)으로 바꿔 정안평을 보필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나라에서 왕계(王稽)라는 사신이 위나라에 왔는데, 정안평은 왕계를 은밀히 찾아가 범저를 추천했다. 정안평은 “우리나라에 장록이라는 훌륭한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사정에 의해 몸을 숨기고 있으나 진나라에 가면 크게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날 밤 왕계는 범저를 불렀는데, 왕계는 범저의 화려한 언변과 화술에 감탄해 버렸다. 왕계는 범저를 신하로 변장시켜 진나라로 데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위나라의 탁월한 세객이 있어 데려 왔습니다. 이 세객의 말에 의하면 현재 진나라의 형편이 ‘누란지위’라고 하는데, 자신을 등용하면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중책을 얻은 범저는 역량을 발휘, 신임을 얻었고 ‘먼 나라와 화친하면서 가까운 나라부터 먹어 들어간다(원교근공책, 遠交近攻策)’는 외교정책으로 진나라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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