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로 법 정신이 현실에서 살아 숨쉬려면 신분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사안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만인에게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법불아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편에서 유래했는데,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강조한 말로, 신분이 높은 자라 하더라도, 법은 절대로 그 앞에서는 아부를 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이고, ‘먹물은 굽은 모양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다’는 ‘승불요곡(繩不繞曲)’과 비슷한 용례를 띠는 성어다. 뛰어난 장인(匠人)은 눈대중으로 먹줄을 사용한 것처럼 맞출 수 있지만, 반드시 먼저 자(尺)와 컴퍼스로 기준을 삼는다고 했다. 아무리 지혜가 탁월한 사람도, 민첩하게 일을 추진함에 있어 명확한 근거(법)를 가지고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군주(君主)가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에 자만하지 말고, 법에 따라 다스릴 것을 한비자는 주문(注文)하고 있다.
중국 한(漢)나라 문제(文帝)때 장석지(長釋之)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정위(廷尉)란 벼슬에 있었는데, 어느 날 한나라 고조인 유방(劉邦)을 모시던 종묘(宗廟)에 도둑이 들어 옥가락지를 훔치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도둑을 장석지에게 넘겨 다스리게 하는데, 장석지는 종묘의 옷과 물건을 훔친 도둑에게 법률에 따라, 사형에 처한 뒤 시신을 시장바닥에 버리는 형벌(기시, 棄市)을 내렸다.
이에 문제는 “짐이 그를 정위에게 넘긴 이유는 그 놈의 집안까지 멸(滅)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소”라며 화를 내자 이에 장석지는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형벌이란 경중(輕重)을 가려 처리해야 합니다. 지금 종묘의 물건을 훔쳤다고 하여 그 집안을 멸한다면, 고조의 능(陵)인 장릉(長陵)의 흙을 한줌이라도 훔쳐가는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떤 법을 적용하시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문제는 한 참 동안 생각하더니 장석지의 판결이 옳다고 여겨 수용했다.
그렇다. 법은 무조건 극형(克刑)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질서와 방종을 부르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법리적용 등에서 한쪽으로 지우치지 않도록 중립과 공정성이 요구되며, 지혜롭고 공명정대하게 판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공직자가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법은 귀족에게 아첨하지 아니하고, 먹줄은 휘어지지 않는다.(법불아귀 승불요곡)’. 법 적용은 권력자에게 아부해서 안 되며, 목수(木手)는 굽은 나무라고 먹줄을 구부려 그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한비자의 충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세간의 인식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뿌리내리고 있으니 통탄하고 한심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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