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벽 왕후박나무

▲단항 나갱이끝
창선 사람들은 최북단에 위치한 나갱이끝에서 삼천포와 왕래하였다. 진주목에 속했던 창선현은 목장의 목마와 조세를 납부하기 위해 감목관이 배를 이용하여 삼천포까지 수송을 담당했다.
어느 날 진주목사가 창선목장 감목관에게 진주목관아로 급히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창선 감목관은 나갱이 끝에서 배를 타려 했지만 파도가 심하여 지시를 어길수밖에 없었다. 감목관은 배를 타지 못하게 되자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목사의 명령을 어겼다는 책임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바쳤다.
이를 본 사람들은 감목관이 낙강하였다고 하여‘낙강’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곳을 창선에서 북쪽 삼천포로 뻗어나간 마지막 끝이라 하여 나간곶이라고도 부른다.

▲하지평(河持平)
하지평 공은 창선면 진동리의 적량촌에 살았다. 소싯적에 선천인에게서 글을 배웠다. 해가 장차 서쪽으로 기울어지려 할 때에 세치의 영상 산봉우리에 이르니 호랑이가 길 복판에 걸터앉아서 곁눈질을 하면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공이 몸을 날려 바로 호랑이의 턱을 움켜지니 호랑이가 입을 다물고 씹지 못하였다. 왼손으로 윗저고리를 벗어서 호랑이 입을 막으니 호랑이가 숨을 쉬지 못하였다. 이에 화살로 죽이고 돌로 머리를 때려 부수어 죽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종을 데리고 가서 메고 갔다. 이때에 나이 16세였다. 공은 용건하고 힘이 세어 손으로 죽통을 쥐면 부서졌고 손가락으로 병을 튕기면 가루가 되었다.

▲왕후박나무
대벽 왕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나무로 수령은 약 5백 년이나 된다. 구전에 의하면 5백여 년 전 이 마을에 늙은 부부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던 중 어느 날 큰 고기를 한 마리 잡았다. 고기 뱃속에서 씨앗이 나와 이상히 여겨 씨앗을 집 앞들에 심었더니 싹이 트고 자라서 현재까지 자란 것이 이 왕후박나무라고 전하고 있다.
그 이후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가 잎이 맑고 사철 푸르며 빛을 반사하기에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매년 섣달그믐날이면 동제를 지내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부터 이 마을에는 대나무 숲이 많았다. 충무공 이순신이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 마을에 있는 대나무와 짚 등을 배 위에 잘라 싣고 가서 전투 중에 배 위에 불을 놓았다. 대나무 마디 터지는 소리가 큰 대포소리 같아 왜적들이 놀라서 도망을 쳤다고 한다.
노량해전에서 패해 강진만쪽으로 도망가던 일본군을 뒤쫓던 우리 수군이 대벽에 상륙하여 이 왕후박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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