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면 장곶이 항공사진

장포리는 긴 개로 이루어져 장포라고 하는데 창선면 진동리에서 분동되었다. 이곳 장포 끝 장곶이에 동메가 있는데 이 동메를 거북산이라고 한다.
이 거북산은 바다를 보고 내려가는 형국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묫자리가 바다 물 속에 있다고 한다.
옛날 한 풍수가 보재기(잠수부)를 보고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물밑에 잠수를 해서 들어가면 돌로 새긴 부처가있을 것이다. 내가 주는 이 고리 두 개를 가지고 들어가서 하나는 왼쪽에 걸고 하나는 오른쪽에 걸어라.”
보재기는 바다 속으로 내려가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이건 분명히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니 고리를 바꾸어 걸어 놓아 보자.”
보재기는 그렇게 결심하고 계속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 바다 속에는 무시무시한 돌부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기절초풍할 광경에 보재기는 앞에서는 고리를 도저히 걸 수 없어 뒤로 돌아가서 걸었다. 보재기는 자신의 고리는 왼쪽에 걸고 풍수의 고리는 오른쪽으로 걸었다. 앞에서 보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고리를 바꾸어 건 보재기는 밖으로 나왔다. 풍수는 고리를 시킨 대로 걸었느냐고 물었다.
“부처가 너무 무시무시해서 시키는 대로 걸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서 걸었는데 내 것은 왼쪽에, 풍수 것은 오른쪽에 걸었습니다.”
그러자 풍수는 호통을 치면서 다시 들어가서 바꾸어 걸라고 했다. 다시 보재기는 물 속으로 들어가 험상궂은 부처를 찾았지만 온데 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보재기는 물 속에서 나와서 사실대로 말했다. 풍수는 탄식을 했다.
“임자는 따로 있는 거야!”
그 후 보재기 집안은 날로 번창하고 풍수 집안은 가운이 기울어졌다고 한다. 보재기는 고리를 부처에게 걸면서 자손의 번창과 큰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 속으로 빌고 빈 것이 틀림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보재기 집안에서 태어난 후손 중 뜻밖에도 조선 말기 삼남지방과 전국을 휩쓴 괴도 영숙이란 사람이 있었다. 조선 말 탐관오리 등이 서민들에게 갖은 횡포를 자행하던 시대에 신출귀몰하게 고관과 부자집의 재물을 탈취하여 불쌍한 서민들에게 양곡과 금품 등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각처에 방을 붙여 괴도 영숙을 체포하라는 영을 내렸으나 신출귀몰한 영숙을 체포하기란 뜬구름 잡기였다.
탐관오리들이 불쌍한 백성들을 수탈해 모은 재물을 다시 찾아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이 무슨 죄인가? 영숙은 서민들의 우상이 되었다. 모이는 사람마다 영숙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탐관오리 고관들은 나졸과 하인들을 시켜 겹겹이 집을 에워싸고 철통같이 경비를 하였으나 날이 새고 나면 귀신도 모르게 재물을 도둑맞고 말았다. 그들은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불쌍한 서민 집에는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르게 금·은 보화 등 재물이 부엌 또는 방에 놓여 있었다.
오늘은 동쪽, 내일은 서쪽 등을 누비면서 탐관오리 집만 털고 다녔으니 과히 영숙은 괴도였다. 주막이나 길거리에서 서민들의 얘기 속에 영숙 소리만 나와도 탐관오리들은 놀라서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 형국이었다.
“오늘은 삼남 김부자 나리 집이 털렸는데 내일은 또 누구 집이 털릴까?”
고관 탐관오리들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수심에 잠겼다. 반면 백성을 위하고 국사를 바르게 하는 고관 집은 절대로 침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운이 다했는지 혹은 목적을 다 했는지는 모르나 진주 감영에서 의도 영숙이 시경(사형 집행인)의 칼날에 운명을 마쳤다는 소문이 나니 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는가?
사형이 오전에 집행되었다는 소문이 진주 장안에 자자하게 퍼졌다. 그런데 점심 때 어떤 주막에 건장하고 우람한 사나이가 주모에게 술 두 사발을 시켰다. 그는 단숨에 마셔 버리고 주모에게 부엌칼 한 자루와 숫돌을 가져 오라고 부탁했다. 주모가 깜짝 놀라 연유를 물었다.
“내가 바로 영숙이란 의적이요.”
주모가 얼른 칼 한 자루와 숫돌을 주었다. 영숙은 칼을 시퍼렇게 갈고 또 갈았다. 그러던 중 주모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영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칼은 사라지고 숫돌만 그대로 있었다.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기에 주모가 거리로 와서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모두가 정말 귀신 같은 영숙이다 라고 하였다.
오전에 사형이 분명히 집행되었다는 방을 보았는데 살아 있다니, 아마 주모가 망령이 들어 헛소리 한다고 했다가 도리어 호통만 당했다고 한다. 조금 후에 장안이 벌컥 뒤집혔다. 영숙을 칼로 목 베어 죽인 시경 두 명이 목이 잘려 죽었다는 것이다. 정말 신통하고 귀신이 놀랄 일이다.
이와 같이 영숙은 죽어서도 혼백으로 탐관오리들을 혼내 주었으니 과히 당대의 의도요 정의인이요 도탄에 헤메는 백성을 구제한 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출생지는 남해군 삼동면이었다고 한다. 남해군 창선면 장포리 장곶 동메를 지금도 수중명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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