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가 불렀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으나 80년대에‘기타 하나 동전 한 닢’이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노래제목이 새삼 떠오른 것은 남해읍 한 레스토랑에서 라이브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강현수(35)씨를 만나고 나서 부터다.

현수씨는 그런 느낌이었다. 기타 하나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노래를 부를 수 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은 사람, 그것이 없다면 존재가치를 잃어버릴 것 같은 사람, 현수씨는 그런 사람 같았다.

현수씨가 남해에서 라이브 가수로 활동한 지는 9개월여 밖에 되지 않지만 그의 노래 인생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래에 취해 살았던 청년

전남 영광 출신인 현수씨는 1991년도 중앙대에 입학해 ‘산하’라는 노래동아리에 들면서 노래인생을 걷게 된다.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음률에 실어 청중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좋았고 무대에서 느끼는 강렬한 희열이 그를 점차 노래세계로 이끌었다.

현수씨는 당시 노래하는 대학생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통한 대학가요제(92년)에 친구들과 함께 ‘울림터’노래패를 만들어 출전해 본선에 진출했을 정도로 인정받았고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노래하는 맛에 흠뻑 빠진 현수씨는 1997년부터 정식적인 직업가수의 길을 걷는다. 서울 명동에 있는 라이브 카페 ‘쉘부르’에 두 번째 시도 끝에 첫 무대를 밟았다고 한다. ‘쉘부르’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했던 이종환씨가 운영하던 곳으로 라이브 가수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무대중 한 곳이라고 한다.

현수씨는 그곳에 일하면서 라이브 카페촌인 미사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전인권, 박완규씨와 함께 ‘엉클톰’ 무대에도 섰고 ‘박상민의 라이브 팍스’ ‘오줌싸게’등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우연히 온 남해, 어느새 정 들어

이런 그에게 남도의 끝 남해행은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길이다.

“원래 떠나기를 좋아했는데 문득 도시에 산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다 싶었습니다. 주위의 복잡한 일도 많았구요. 그때 마침 같이 일하던 형이 남해에 가지 않겠냐고 하길래 그것도 좋겠다 싶어 기타 하나 달랑 메고 온 겁니다. 처음 만나긴 했으나 이곳 사장님에 대한 인상이 좋은 것도 영향을 미쳤구요”

그냥 떠나고 싶어 온 곳이 남해였으나 처음엔 거친 말투에 놀라 ‘이것 잘못(?) 온 것 아닌가’싶기도 했단다. 그러나 곧 거친 말투속의 순박함, 따스함을 발견하고는 몇 년이 되든 남해에 있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서울에 있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와 지금은 아예 읍내 아파트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아무리 인정이 메말랐다고 하지만 아직 남해에는 사람 사는 정이 느껴집니다. 아는 사람도 하나 둘 생기고, 작은 시골에 사는 맛을 알아 가야 한다고나 할까. 지금은 남해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일하는 곳이 줄어 수입도 따라 줄긴 했지만 대신 그만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죠”

서울에서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조차 싶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지금은 시간 여유가 다소 있어 가족들과 함께 스포츠파크 등으로 나들이도 가끔 간다고 한다.

아이들도 놀아주는 아빠 탓(?)인지 남해가 좋다고 주위에 자랑을 늘어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땅히 아는 사람이 없어 적적해 하는 아내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곧 아내에게도 좋은 친구들이 생기기라 기대하고 있다.

“군내에도 좋은 공연 많았으면”

현수씨는 자신이 속한 라이브 레스토랑에서만 뿐만 아니라 뜻있는 문화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생명평화문화제 공연과 2월 남해읍민 정월대보름 문화공연에서 그는 라이브 가수답게 현장 분위기를 이끌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노래를 필요로 하는 곳이나 문화공연 기획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도움을 주고 싶다”는 현수씨는 “군내에 작은 공연마당이라도 생긴다면 훨씬 활기 넘치는 남해가 될 것 같다”며 그런 일에 자신의 재능을 쏫고 싶다고 한다.

세상사는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평생동안 부르면서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노래하는 청년 강현수씨.

이 곳 남해에서 가족들이랑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의 소박함이 그 기타 음율에 실려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맺히기를 바래본다. 
/한중봉 기자 bagus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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