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한 사람’의 귀촌, 전국이 주목하는 지역 명소로 변화 이끌어
“일이나 목적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 “주민을 ‘대상화’해서는 안돼”

한반도 끝 남해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서울을 경유해 다른 취재일정을 소화하며 잠시 발걸음을 쉬어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평창과 남해간의 거리는 꽤나 멀었다.
갈수록 심화돼 가는 남해군의 인구감소 문제, 그 해법으로 ‘문화귀촌’이라는 콘텐츠에 주목하고 각종 자료를 모으던 중 상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탓에 각종 언론에 소개된 빈도도 높았고, 각종 잡지나 문화예술지에서도 ‘감자꽃스튜디오’라는 이름은 계속 눈에 띄었다.


사실 강원도 평창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사진>는 지난해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 창출과 유휴시설 재활용의 수범사례로 본지에도 소개된 바 있었다. 논조나 내용이 중복되지는 않을까 하며 조심스레 더 자료를 수집하던 중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가 평창군과 평창읍이 수여한 군민대상과 읍민대상을 수상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게 됐다.
‘문화귀촌’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이나 그 흐름이 최근에 비약적으로 생성된 일은 아니었기에 군내에도 일부 문화예술인들의 귀촌, ‘문화귀촌’의 사례는 있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역민들과 융화되는 사례도 많지만 일부에서는 지역민과 귀촌인, 구체적으로 ‘문화귀촌인’과의 마찰이나 갈등으로 인해 지역주민과 척을 지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전언한대로 서울을 경유하기는 했지만 400km가 넘는 거리, 그 거리를 달릴 수 있었던 궁금증,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를 만나야 할 이유는 그것 하나로도 충분했다.
이선철 대표가 이 곳에 자리잡은 것은 2002년, 꽤 잘 나가던 ‘문화기획자’였던 그가 산골마을 폐교에 둥지를 튼 것에는 꽤 ‘거창하고 원대한 포부나 꿈’ 같은 것이 있을 듯 했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았다.
20대 중반에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공연기획실장으로 10년을 일하고, 대학로, 홍대 등지에서 활동하며 이승환, 자우림, 긱스, 롤러코스터 등 유명가수들과 함께 일했던 그는 돌연 건강에 이상을 느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말이 좋아 엔터테인먼트사업이지 ‘사람’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매일 먹고 마시는 것이 일 자체가 됐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 “감자꽃스튜디오가 유명세를 타면서 이 곳을 찾는 분들 다수가 이를테면 ‘지역에서 뿌리내린 문화예술’, ‘지역재생’, ‘지역을 무대로 한 문화예술비즈니스’ 같은 목표와 목적이 있겠거니 하고 오시지만 부끄럽게도 그냥 저 살자고 택한 귀촌”이라는 것이 이 대표가 설명한 솔직한 그의 귀촌 배경이다.
다행히 그에게는 과거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일할 당시 폐교를 임대해 사물놀이학교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폐교를 빌려 전통악기 공방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다. 자연스레 체득된 경험을 바탕으로 ‘적당한 폐교’를 찾다보니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에 자리한 노산분교가 그의 레이더에 걸린거란다.
1999년 노산분교가 문을 닫았고, 그는 3년 뒤인 2002년 이 곳에 자리를 틀었다. 학교 전체를 바꿔 지금의 ‘감자꽃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목표나 꿈은 없었다. 그러던 중 2005년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가 평창을 찾았을 당시 우연찮게 전국적으로 유명한 문화기획자가 이곳 노산분교에 귀촌해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고, 김 지사의 지시로 노산분교, 지금의 감자꽃스튜디오는 만들어졌다. 평창군과 강원도의 지원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하고 지금은 전국 각양각지의 지자체가 주목하는 우수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지역주민들의 추억이 그대로 녹아있는 폐교에 갑작스레 찾아든 ‘이방인’에 대한 주변 마을 주민, 어르신들의 경계는 상당했다. 이 대표는 이런 주민들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런 경계’이자 강산이 한번은 바뀐 지금도 ‘수위는 낮아졌으나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경계’”라고 했다.
그는 꽤나 유명한 문화기획자이고 그의 머리와 손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프로젝트로 많은 지역에 새로운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많은 지역축제의 변화를 그가 이끌어냈고 감자꽃스튜디오의 성공사례를 중심으로 많은 지자체에서 폐교를 활용한 문화예술공간 조성 등등의 강연요청이 쇄도하는, 또 문화체육관광부 대표축제 심의위원이자 문화예술계의 상당수 정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전문가’인 그는 평창, 특히 감자꽃스튜디오가 있는 이곡리를 포함한 주변마을 어르신들에게는 그냥 자신들의 추억이 녹아있는 폐교에 갑작스레 찾아든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그의 표현을 빌자면 “평창과의 거리와 자신의 유명세는 비례한다”며, “어르신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서운할 법도 하건만 그에게선 지역주민들의 이런 반응에 서운한 감정은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문화예술계에서 이른바 ‘꾼’으로 살아왔던 탓인지 그가 지닌 특유의 ‘긍정’이 그를 해탈에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실제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통해 목도해 온 귀촌인과 지역주민간의 갈등사례를 언급하며 이같은 갈등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지만 꽤 깊이 생각해야 할 화두를 던졌다.
“많은 귀촌인들이나 특히 문화예술인들은 에고(Ego, 자아)가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한 자의식이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죠. 다소 그 둘의 결은 다르지만 지역주민들에게도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해 온 룰이나 관습이 존재하죠. 그 둘은 언제든 충돌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충돌이 있기전 형성되는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죠.”
이어진 그의 설명은 “감자꽃스튜디오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고 또 이 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에 지역민들이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면 ‘경계’의 담은 낮아지고 또 ‘이해’라는 것이 생깁니다. 이 곳을 친밀하게 여기는 분들은 이 곳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시게 되지만 별 관심없는 분들은 아무리 홍보를 하고 초청을 해도 발길이 닿기 힘들어요. 강연을 다니면서 많은 곳에서 실제로 보고 겪고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갈등의 사례들을 보면 일방이 타자에게 강요하면서 생기는 갈등이에요. 문화예술인들은 강한 에고를 바탕으로 지역민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자신의 목표에 공감하기를 바라고 동참하기를 요구하죠. 거기서 갈등은 발생합니다. 지자체도 마찬가지죠. 요즘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들이 많은데 상당수 이런 사업들의 계획서나 행정기관에서 생성한 문서들을 보면, 마치 문화예술이 전무한 농어촌 지역,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 상당한 문화적 혜택을 주는 것처럼 기획되고 참여를 강요하는 형태를 띱니다. 대단한 수혜를 주는 듯한 뉘앙스를 띠지만 현실적으로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수준높은 오케스트라 공연보다 전국노래자랑이 더 인기를 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거죠.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감자꽃스튜디오’가 문을 열고 난 뒤 하나의 원칙처럼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내가 하는 일에 주민들을 대상화하지 말자’입니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관심, 참여를 끌어낼 지속적인 문화기획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자신의 일이나 자신이 가진 목표에 주민들을 동원하는 형태는 선순환보다는 갈등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쉬운 듯 어려운 답이다. <다음호에 계속>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