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수산리 박종포씨 조부 전기이다.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고 옆으로만 벌어지고 키가 작달막하여 사람들은 그를 ‘돔백이’라고 불렀다. 그는 ‘돔백이’라고 불러도 결코 탓하지 않았다. 주위의 뭇 사람들에게 호쾌한 성품이 아이 어른 없이 ‘돔백이’라는 애칭으로 통했다.
돔백이는 가세가 넉넉지 못한 젊은 시절 한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다. 주인집에서 비위만 잘 맞추어 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머리가 영특하고 기지가 빨라서 남들이 생각지도 않는 새로운 농작업 방법을 창안하여 능률을 올려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그를 따라 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농삿일이란 조상 대대로 물러 받은 방식 그대로 답습되고 별 생각 없이 남들과 같이 하여 왔는데 그러나 이 사람(돔백이)은 여러 가지 작업 형식을 바꾸었다. 그러기 때문에 작업능률이나 결과가 월등하여 모두가 그에 의하여 작업형태도 많이 변화했다 한다.
예를 들자면 첫 쓰레질을 종래는 ‘쟁기골’에 따라 마치고 두 번 쓰레질은 ‘동쓰레질(가로 쓰레질)’로 하고 최종 쓰레질을 처음 것같이 하여 마무리 지어 온 것을 이 사람은 첫 쓰레질을 대각선으로 시작하여 ‘재쓰레질’을 반대로 바꾸어 하고 최종 마무리를 골대로 하여 농우도 힘을 덜게 하였고 논도 잘 골라졌다. 특히 이모작인 경우 보리 뿌리가 흙 속에 고루 묻혀 보리 짚이 물 위에 떠밀려 다니는 폐단을 덜게 하였다.
그리고 논보리 갈이인데 오늘날은 농기계가 발달하여 쉽게 파종작업이 되지만, 옛날에는 미리 쟁기로 이랑을 떠서 벼릇덩이를 말려서 부드럽게 부수어 다시 이랑을 떠서 보리를 파종했는데 이 흙덩이 깨는 것이 여간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이를 돔백이는 ‘뫼’자루를 짧게 만들어 두 개를 양손에 잡고 회전시켜 서마지기 논배미를 하루아침에 해치웠다.
그렇게도 일 잘하는 돔백이도 비위 틀리면 심술궂은 장난을 친다. 안주인이 몹시 드세고 어찌나 사나운지 돔백이는 작심하고 산에 나무하러 가서 가시덤불 큰 것만 골라서 덤불채 묶어 뿌리만 베어서 지고 왔다. 가시가 엉키고 엉켜 손댈 곳이 없는 것을 주인아주머니는 돔백이 심술이 뻔히 보이는지라 아랑곳없이 양손에 ‘메트리’를 끼고 곧잘 탈 없이 불을 때었다.
“네가 아무리 해 봐라 내가 끗덕이나 할건가.”
그 안주인에 그 머슴이었다.
“쯧쯧 제발 사람 같은 나무 해 오라.”
바깥어른이 보다 못해 한 말이다. 남들과 같이 솔갈비나 좋은 나무를 해 오라는 뜻이다. 돔백이는 뒷날 온 들판을 쏘다니면서 허수아비만 몽땅 지고 왔다. 주인이 기가 막혀 고함을 쳤다.
“이게 무슨 꼬라지냐”
“사람같은 나무 해 오라 해서…….”
주인아주머니는 약이 바짝 올라서 생선국을 끓여도 살점 하나 없이 국물만 아침상에 올렸다. 밥상을 물리고 일하러 갈 채비는 않고 물지게를 챙기느라 야단이다.
“어이 박서방 그것 뭐 하려는 건고.”
“장꼬지 물 길러 갈까 봐요”
고기가 헤엄쳐간 물 길러 간다는 소리다. 돔백이가 마당을 쓸다가 부엌을 바라보니 부엌에는 청어를 적쇠에 올려놓고 안주인은 물 길러가고 없었다. 청어는 맛있게 구워져 냄새가 진동하여 군침을 삼키게 하는지라 냉큼 부엌에 들어가서 청어를 먹고 주인아주머니 돌아오는 것에 때 맞춰 청어 대가리는 강아지에 던져주고 딴청을 부렸다.
“어랏! 이놈의 개야!사람도 못 먹는 청어를 개가 물고 다니다니~ 응.”
항상 주인어른 밥상은 반찬도 한두 가지가 더 있고 쌀밥이고 식구들 상보다 먼저 차린다. 돔백이 나무지게에 낫 꽂아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부엌에 밥상 차리는 눈치 살피다가 밖에서 선연 동배들끼리 같이 가자고 소리 주고 받는 양 떠들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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