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 '복멩이 덤벙' 이무기가 살았다는 홍현마을 하천 폭포


착한 해녀와 농부의 전설이 남은 벼락 맞은 바위. 사랑을 지켜준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남면 홍현마을은 문헌에 따르면 약 1300년 전인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마을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전설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홍현(虹峴)이란 지명과 관련된 전설을 토대로 마을 주변 자연환경이 부합돼 구전임에도 전설이 지닌 생명력과 신빙성을 더욱 더한다.
이 마을 김옥진 이장과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는 우선 지명과 관련된 처녀 총각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다.
아주 오랜 옛날 홍이라는 처녀와 현이라는 총각이 이 마을에 살았는데 현이 총각은 이웃에 사는 홍이 처녀를 몹시 사모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현이 총각이 바닷가에서 해삼을 줍고 있다가 고동잡이 바래를 나온 홍이 처녀와 마주치게 되었다. 현이는 반갑고 애타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홍이 처녀에게 오늘밤 저기 보이는 작은 폭포수 앞에서 만나자고 남몰래 다가가 귀띔을 했다.
홍현마을 김옥진 이장

그날 밤 홍이는 주저하며 망설였지만 보름달에 비친 앵강바다의 반짝이는 윤슬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도 모르게 폭포수 밑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날 밤 현이는 평소 사모하던 홍이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 후 달빛이 앵강바다에 비치는 날이면 이웃마을 처녀총각들도 이곳에서 사랑을 이루었기에 지금도 작은 폭포는 사랑을 이뤄주는 자리로 전해져온다는 것이다.
이후 이웃마을사람들은 홍이와 현이의 이름을 따 홍현(虹峴)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300년 된 모과나무 전설도 지명과 관련되어 있다.
그 옛날 금산 보리암에 머물던 어느 큰 스님이 금산에서 서편의 앵강바다를 굽어보다 바다 건너 마을에 아름다운 칠색 무지개가 신비한 기운을 뻗히고 있어 가보니 큰 모과나무 옆 하천에서 발현하여 고갯마루 쪽으로 무지개가 피어있어 그 형상을 보고 이곳을 무지개 홍(虹)자와 재 현(峴)자를 따서 홍현(虹峴)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실제 이야기 속 모과나무는 몇 년전 마을을 다녀간 전문가가 크기, 나이테 등을 살펴보니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것으로 판명했다고 한다.
홍이와 현이가 사랑을 이룬 해안가 폭포
홍현마을에는 사랑을 지켜준다는 벼락 맞은 바위에 관한 또 다른 전설이 전한다.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복멩이 덤벙’(마을을 관통하는 계곡 폭포 밑 작은 소. 이곳에서 목욕하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짐)에 사는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는 예쁜 여자와 함께 승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가 마을에서 잊혀갈 때 쯤, 홍현 앞바다에서 물질한 해삼 우럭 등을 홀로된 이웃 어른들 집에 조금이라도 두고 오는 착하기로 소문난 아주 예쁜 해녀와 농부가 금슬 좋게 살고 있었는데 이 부부는 아이가 없어 늘 설흘산에 가서 지성을 들였다고 한다.
어느날 이야기 속에만 전해 내려온 이무기가 실제로 나타나 이 해녀를 낚아 채 마을 한길 옆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승천하려 했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갑자기 소치섬 밖에 있던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벼락이 때리자 이무기가 죽고 벼락 맞은 바위는 반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그 뒤 죽을 고비를 넘긴 착한 해녀는 아이를 낳았고 부부는 백년해로하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과 관련 김옥진 이장은 벼락 맞은 바위는 지금도 한길가에 있다면서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자신이 어릴 때 어른들은 한결같이 이 착한 부부의 사랑을 설흘산이 지켜 주었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홍현 해라우지마을은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된 바 있고 농진청이 선정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마을’ 전국 100선에 선정된 바 있다. ▲도움주신분들- 김옥진 이장과 마을주민
/홍재훈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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