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말의 홍수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말의 홍수시대에 뒤범벅이 되어 살다보니 말에 대한 면역성이 결핍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손에 들었던 무기를 내려놓게 할 만큼 깊은 감동을 주도록 말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을 향해 진실성 없는 감언이설로 떠드는 사이 인기주의와 무책임한 말로 스스로 평가절하 시켜왔고 불신과 반복, 비도적적 비윤리적인 언행 때문에 정의라는 말의 가면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비수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벗겨져 나올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세상을 보는 눈이 비틀어지고 불안스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너나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 잘못되고 있는가를 한번쯤 깊이 반성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세상풍조를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병든 사회를 결코 치유시켜 나갈 수도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교사가 제자의 시험답안지를 대리 작성해 준 부정행위로 담당교사들이 검찰에 구속되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나라 교육이 이 정도에 이르게 되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학부모와 국민들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러한 때에 후진양성을 잘못해온 것이 바로 내 탓이라고 통회하며 매를 들고 자기 종아리를 후려치며 국민을 향해 엎드려 절하고 용서를 비는 최고 지성인들의 모습은 그나마 냉혹한 이 사회에 조그만 감동을 일으켜 주었다.

비단 교육을 책임진 교육자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을 책임진 지도자들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며 자기 종아리에 채찍을 가하는 심정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왔다면 오늘날 사회가 이 정도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막힌 현상은 국가경영을 책임졌다는 사람들의 자세는 과거나 현재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사회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이 순수성을 외면한 채 자기와 신념을 같이 하는 자는 깨끗하고 정당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자는 부도덕하고 부정하다는 편견에 빠져든다면 이는 위험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지난 날 독재와 싸운 사람일수록 자신들이 정의의 세력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이길 수 있었다고 하겠지만 이것을 신앙처럼 생각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매우 위험한 착상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확신은 독재와 싸울 때는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민주화과정 후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는 독선으로 변화에 장애가 될 수 있고 자기가 절대로 옳다는 경직된 신념 때문에 변화된 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처하지 못하며 이런 독선 때문에 스스로 판관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독점하고 법위에 군림하여 편향적 운동으로 국민에게 비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독선으로 인해 5060대의 경험이나 지혜는 들어설 자리조차 없게 되었다. 자기는 옳기 때문에 국민여론은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상대는 기득권 세력이고 독재에 기생한 세력이며 수구꼴통이라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고 역사하고만 이야기 하면 된다는 주장이라면 이 얼마나 가슴 섬뜩한 아집이고 독선적인 논리인가?


이제는 독선의 가면을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국가의 장래와 국민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슬기로운 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어떤 이유나 조건도 있을 수 없다.


분단을 넘나드는 이념논쟁과 저주의 굿판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기에 걷어치워야 하고 산업화 시대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5060대의 경험이나 지혜를 빌려야 한다.

나의 생각에 반하는 상대의 쓴 이야기도 받아들일 줄 아는 도량을 가져야 하고 편향된 신념을 너무 앞세워 상대방을 인정치 아니하거나 상대편을 갈라 상대방을 공격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지나친 개혁열정으로 강박증과 조급증에 사로잡혀 귀중한 시간과 나라예산을 낭비하면서까지 국력을 분산시켜서도 안 된다.

모름지기 국가발전과 국민의 안위를 생각하고 문제해결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균형감각을 유지한 채 잘못된 부분은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 국민화합을 이끌어내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지혜로운 사람이 훌륭한 지도자이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데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고 세상민심도 쉴 새 없이 생동하고 있다. 독선이 판치는 무서운 세상에서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되지 않아야 하고 또 다시 역사바로세우기 세력이 불현듯 나타나 국가가 불행해지는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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