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봉사로 살았던 일생, 각계 조문·애도 발길 이어져

▲지난 19일 오전 열린 고 현위헌 선생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 곁을 지키고 있는 현박준 (재)현위헌관장학회 이사장
▲영결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있는 박영일 군수
▲고 현위헌 선생의 영결식에서 헌화를 마친 유족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다.

지난 15일 새벽, 향년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재)현위헌관장학회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을 지낸 故 현위헌 선생의 영결식이 지난 19일, 이동면 초음마을 현위헌관장학회 설립자 기념관 앞에서 엄수됐다.
한 평생을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을 거둔 뒤 일제에 수탈된 우리 문화재를 끝내 고국의 품으로 되가져 오지 못한 회한을 고향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열정을 바쳤던 고인의 빈소는 읍 토촌마을 남해전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의 장례는 지난 19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졌으며 (재)현위헌관장학회 이사이자 (사)대한노인회 남해군지회 이태권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동 재단 강영곤, 김선옥 이사와 이춘송 감사 등은 장례위원을 맡아 유족과 함께 고인의 곁을 지켰다.


고인의 빈소에는 한평생 우리 문화재를 찾는 일과 더불어 후학양성을 위한 헌신적인 장학사업에 열정을 다했던 ‘섬나그네’ 故 현위헌 선생을 추모하는 지역민과 재단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온 장학생과 수혜학생 가족의 조문이 이어졌다.
평생을 나눔과 봉사의 정신으로 헌신하며 살았던 ‘섬나그네’ 고 현위헌 선생은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남을 위한 배려를 보여줬다.
고인의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화환과 조의금은 절대 받지 마라. 다만 너희들(유족)이 조금 힘이 들더라도 장례를 5일장으로 치러 고향마을 어르신들을 잘 대접하고 특히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들이나 아이들이 찾거든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여 보낼 수 있도록 해라”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듣는 이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고인이 세상에 마지막을 고했던 지난 15일은 고인이 지난 1984년 문중 자녀를 대상으로 한 시작해 1994년 장학재단 설립 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이어온 (재)현위헌관장학회 장학생 선발을 위한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날이다. 고인은 생전 일년 중 가장 의미있는 하루로 장학금 수여식이 열리는 날을 꼽아왔고, 이날을 준비하기 위해 귀국했다 갑작스런 병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이 타국에서 갖은 고초을 겪으며 모은 사재를 털어 세운 (재)현위헌관장학회는 자산 240억 규모로 국가 또는 기업, 공공법인이 아닌 개인이 출연해 설립한 장학재단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장학회는 매년 남해군내 고등학생과 남해출신 전문대·대학 재학생 수 십명에게 매년 기억원대의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빈소에서 발인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고인이 평생 그리워했던 고향 마을, (재)현위헌관장학회 설립자 기념관 앞으로 운구됐으며, 본 영결식에 앞서 고인의 문중인 연주 현씨 문중회와 (사)대한노인회 남해군지회가 마련한 노제가 진행됐다.
19일 오전 11시에 열린 고인의 영결식은 한일 양국에 거주하고 있는 고인의 유족은 물론 고인이 평생을 그리워했던 고향 마을 주민, 고인이 사재를 털어 도움의 손길을 전했던 장학생, 대한노인회 남해군지회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고인의 영정 옆에는 고인이 평생 받은 한일 양국의 수많은 감사장과 표창 중에서도 고인이 평생 그리워했던 고향에서 받은 군민대상과 지난 2013년 헌신적 봉사와 나눔의 가치를 실천해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한 대통령 표창장이 옆에 놓였다.
영결식에 참석한 박영일 군수는 추도사에서 “고인은 한평생 조국과 고향을 위해 헌신해 오다 가을 낙엽보다 더 무심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우리 민족의 혼이 배인 문화재를 찾는 일에 몰두했으며, 장학사업을 통해 자랑나는 미래 세대에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우리는 고인의 꿈과 열정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또 고인과 생전 연을 맺어온 각계의 추도사와 헌화도 이어졌다.

장례절차에 따라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은 그가 생전 가장 많은 공을 들였고, 또 가장 보람되게 생각했던 장학사업의 산실, (재)현위헌관장학회 설립자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연죽 추모누리 화장장으로 운구됐으며, 영정이 설립자 기념관을 떠나자 유족과 마을주민들은 억눌러온 슬픔을 터트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한민족 광복 문화상, 주일본 특명 전권대사 감사장, 부산대·부경대 감사패, 남해군민대상과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왕성한 사회공헌활동과 장학사업을 추진하며 경남도교육감상, 교육부장관 감사패, 일본 적십자 사장 감사패 등을 수상했으며, 고인의 일생을 기록한 자전적 성격의 저서 ‘섬나그네 상·하권’과 ‘우리 것을 찾아 한평생’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선친의 뜻을 이어 (재)현위헌관장학재단을 맡고 있는 장남 현박준 이사장과 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일선 씨와 차녀 월선 씨,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미치코, 쿠니코 씨 등이 있다.
세상에 베푼 당신의 덕(德)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영면과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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