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진산(鎭山)인 망운산(望雲山)과 이어지는 녹두산 줄기가 좌청룡의 형국이요, 지리산의 줄기인 금오산(金鰲山, 하동군 금남면) 줄기가 우백호로 가깝고도 먼 산이 겹겹이 둘러쳐 있으며 광양만과 강진바다를 앞뒤로 하고 노량 앞 남해대교 밑을 지나는 해수가 세차게 흐르고 있다. 노량리 산성산 줄기와 감암마을 뒷산 그리고 마을 앞 대와도(大蛙島)와 관계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정주 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설천면 노량리 감암마을에 살다가 임종을 하였다. 이 마을은 뒷산만 산이지 앞과 옆은 바다이기 때문에 가난한 이 사람에게는 묘자리가 없었다. 아들은 걱정만 하다가 출상이 내일로 다가왔지만 묘 쓸 곳을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날 밤 상주가 빈소에서 막 잠이 들었는데 하얀 도복을 입은 도사가 나타나 “조빈석부(朝貧夕富, 아침에 거지가 저녁에 부자가 된다)”라고 하면서 말하였다.
“유명한 인물이 나올 곳은 마을 뒷산 어느 지점이 좋으니 묘를 쓰면 좋을 것이다. 하관 일시는 죽은 소가 울거든 하라.”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상주인 아들은 꿈에서 깨어나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일단은 꿈에서 일러준 곳을 묘 자리로 정하고 죽은 소가 언제 울지도 모르는 일이라 장례 출상 시간을 아침 일찍 정하였다. 평상시의 출상 시간보다 일찍 뒷산묘소로 상여는 올라갔다. 상두꾼들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여 빨리 산을 내려가자고 하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상여가 올라온 지 1시간 이상이 지났을 때였다.
이웃 노량마을에서 심씨 집안에 초상을 당하여 건너편 산으로 북과 강쇠를 치며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한 사람이 말했다.
“지금이 하관할 때다. 들려오는 저 북소리는 소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죽은 소가 우는 소리다.”
상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하관을 시작하였다. 하관을 한 장소에 안장을 하려고 시토를 하는데 관이 흔들려서 관 밑을 보니 자그마한 돌이 있었다. 그 돌을 뽑아내니 그 곳에서 흰 백게가 나와 같이 매장을 하였다.
그 이후 유명한 인물과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일본의 침략을 당하여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이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자리의 맥을 없앤다 하였다. 13인의 위원회를 동원, 게설의 맥에 해당되는 마을 앞의 대와도에서 땅을 넓게 하고 불을 놓아 감암마을 뒷산의 정기를 빼내는 등 부자와 유명인물 출생을 방해하는 못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지금도 불을 놓고 땅을 판 흔적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하여 부자와 인물이 이 마을에 출생이 안 된다고 이곳 지씨 문중에서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백게의 정기가 묻혀 있는 명당자리의 흙을 바다에 뿌렸기 때문에 마을 앞바다와 대와도 주변에는 4~5월이면 도다리, 볼락, 6~9월에는 감성돔이, 10~1월에는 노래미, 볼락이 많이 잡혀 마을주민들의 주 소득원이 된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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