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전설을 찾아서 ⑦창선면 단항마을
우리마을 전설을 찾아서 ⑦창선면 단항마을
  • 김인규 기자
  • 승인 2016.11.04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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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성벽·마구간으로 이용된 ‘금오산성’부터

장군이 운치를 즐긴 ‘장수(장군) 바위’ 이야기도 이어져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한 명의 장군이 적의 동태를 살피고, 휴식을 취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장수(장군) 바위 위에서 찍은 전경.

2003년 창선~삼천포대교 개통으로 설천면 노량과 함께 남해로 접어드는 관문에 위치한 창선면 단항마을은 국난(國難)의 역사인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설과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남해 사람들에게 ‘임진왜란’하면 흔히 이순신 장군으로 대변되는 노량해전과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이락사)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곳과는 지리적으로 떨어진 단항마을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탓에 취재하러 가는 길이 궁금증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학창시절 국사선생님이 임진왜란 발발연도가 1592년이라는 것을 설명하며 쉽게 외우려면 “왜적이 쳐들어 왔는데 이러구 있(일오구이, 1592)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던게 생각나 혼자 키득거리며 한참을 차를 내달려 단항마을 정일용 이장을 만났다.
장수 바위에는 장군이 머물렀던 손자국과 타고 온 말의 발자국 등 흔적이 남아있다.

정일용 이장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동태를 살피고 또 왜군에 맞서 마을을 지켰던 ‘금오산성’에 대한 이야기와 이 곳에서 전쟁에 중요한 파발과 기병들의 발이 됐을 말(馬)에 대한 말(言)을 들을 수 있었다.
창선면 단항마을 뒷산 택인 금오산은 해발 261m의 낮은 산이지만 산세는 가파르다. 이 산머리에 앉은 금오산성은 지난 2003년 경남도기념물 제249호로 등재된 성곽이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을 보호하고, 마구간 역할을 했던 성으로 추정되고 있는 금오산성.

금오산성에 오르면 눈 아래 푸른 빛의 동대만과 삼천포항 일대가 훤히 내다뵌다. 위치로 보아 이곳은 임진란시 현재 사천시 대방동 바깥 바다에 있는 위치한 인공항구, 대방진굴항과 함께 사천만의 초양도와 늑도, 학섬 주변을 오가던 왜군을 경계하는 중요한 군사요충시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금오산성이 자리한 금오산의 옛 이름은 ‘질마산’이다. 정 이장과 마을어르신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곳은 성터로 전쟁시 마을 방어의 목적도 있었지만 전쟁에서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기동력을 제공했던 말을 키웠던 곳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질마산’이란 이름도 이 곳에 서린 말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산 이름의 유래는 그 어느 곳에서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길의 사투리인 ‘질’과 한자 말 마(馬)자가 합쳐져 ‘말이 많이 다닌 길이 있는 산’ 정도로 짐작된다. 또 이 질마산내 여러 골짜기 중  ‘마골작’이라는 골짜기 이름도 이 곳에서 키웠던 ‘말’ 때문에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 지명 중 하나다.
옛날부터 극심한 가뭄이 일어도 마르지 않고 마을주민의 ‘생명수’가 난 마골작에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다.

실제 정일용 이장도 “어렸을 때 산에 놀러가면 산골짜기 곳곳에서 말뼈를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고, “선대 어르신들의 구전에 의하면 왜란 이후에도 이 곳 마을 주민들이 식용이나 내다팔 목적으로 말을 키웠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마골작’은 또 최근까지 마을 주민들의 식수로 쓰일 정도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가뭄이 심할 때도 마르지 않아 마을주민들 사이에서는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라는 정 이장의 설명도 곁들여졌다.
금오산성 남문지에서 북쪽으로 십여분을 걸어가다 보면 이 마을 전설 중 귀를 솔깃하게 할 장군(장수)바위를 만날 수 있다.
마을어르신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일견 오돌토돌해 보이기만 하는 이 바위는 임진란 당시 산막을 치고 병졸을 지휘하던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장수가 이 바위에 기를 꽂고 앉아 사방을 경계하던 중 오래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잠시 현기증이 일어 넘어질 뻔 하다 바위를 손으로 짚어 털썩 주저앉았고 그 흔적이 기를 꽂았던 자리와 장군이 앉은 자리, 손을 짚은 자리가 바위에 남았다는 것. 또 이 곳에는 장군의 발자국과 질마산을 내달렸던 말발자국으로 전해지는 흔적과 함께 전쟁 중 장군이 고단한 몸을 잠시 누이고 동대만의 절경을 보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고 전해지는 돌베개가 있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장군이 베고 누웠다는 돌베게는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적부터 흔들거리다 언제인지 모를 때 인근 덤불 아래로 떨어져 지금은 눈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마을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를 설명해 준 정일용 이장.

또 단항마을에는 임진왜란과 말에 관련된 전설 외에도 고대 선사시대부터 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지석묘)’도 인가와 주변 농지에 수 기(基)가 남아 있어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임진왜란 당시 힘겨운 전투 중 병졸들과 함께 이순신 장군이 쉬었던 ‘쉼터’로 알려져 있고, 500년전 이 마을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던 노부부가 큰 고기를 잡았는데 그 고기 뱃속에서 나온 씨앗을 심었더니 그 씨앗이 자라났다는 영험한 자태의 왕후박나무도 마을 인근에 자리해 있어 대표적인 볼거리가 되고 있다.
▲도움주신 분 - 단항마을 정일용 이장
/김인규 기자 kig2486@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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