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도

(3)안동 유벙어리와 일본 밀정
임진왜란을 몇 해 앞두고 일본은 두 사람의 밀정을 우리나라에 보내어 나라 안을 몰래 조사해 간 일이 있었다. 이 때, 안동에 유병어리(벙어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앞일을 잘 내다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 집을 찾아온 두 사람의 중이 있었다.
벙어리는 말을 못하므로 글로써 묻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 두 손님은 일본 밀정으로 바로 쓰시마섬주(對馬島主) 소오 요시토시와 중 겐소였으나 일부러 조선 사람으로 거짓 행세를 했었고, 또 그 유 벙어리는 당시의 영의정 류성룡의 형이었는데 일부러 벙어리 행세를 한 것이었다. 유 벙어리는 두 사람을 맞아들여 정중히 대접을 하였다. 주인은 미리 벗어 두었던 독한 술를 권하자 손님들은 입맛이 당기는 대로 마시고 또 마시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취했다.
계획대로 그들을 깊은 잠에 빠뜨린 유 병어리는 슬쩍 그들의 행장을 풀어 헤쳐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지도에 온갖 군사상 중요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유 병어리는 앞일을 아는지라, 장차 남해에서 두 나라 사이에 해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분명히 그들은 이 지도로써 작전을 세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지도 곧, 남해군 고현면 관당들과 그 너머의 성산일대와 설천면 비란 일대의 자방이었는데 푸르게 칠하여 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도를 감쪽같이 접어서 그들의 행낭 속에 먼저 그대로 집어넣었다.
그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량바다에서 싸우다가 왜군은 우리 수군을 피하여 강진바다로 빠져 나가려고 관음포(고현면 이락산 남쪽바다)로 몰려 왔다. 그런데 지도에는 이 바다가 바로 강진바다와 잇대어 있건만 천만 뜻밖에도 앞에는 나지막한 산 막혀 있는 것이 아닌가?
뒤에는 이순신 장군이 쫓아오므로 그들은 독안에 든 쥐와 같이 되어 거의 전멸 당했다고 한다. 지금 남해군 고현면 앞 관음포는 뭍으로 메워져서 바다가 옛날보다 수백 미터나 줄어졌고 이제는 다시 이락산 중간에서 고현면 갈화리 선창까지 막는다니 이렇게 보면 옛 모습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유병어리가 푸르게 필하여 바다처럼 고쳐버린 이 나지막한 고개를 옛날부터 ‘가칭이’, ‘가칭고개’, 또는 ‘가청’, ‘가청고개’라고 불러 왔다.
<김계원 선생이 1965년도 초등학교 4학년「겨울방학 공부」에 실은 내용 전문>

(4)류성룡의 형 류운룡
남해군 고현면 오곡리 앞산은 임진왜란 전까지는 전야산이라고 불려졌는데 조선 선조 때 와서 가청산(加靑山)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선조 때 경북 안동에 류운용(柳雲龍)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이 사람은 류성룡의 형으로 지략이 뛰어나고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점을 쳐보니 3일 후 일본 밀정이 중으로 가장하여 자기 집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 3일 만에 중을 가장한 밀정 두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모르는 척 하고 두 명의 중을 극진히 대접하고 술을 먹여 취하게 했다.
그래서 중이 술에 취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중들의 행랑을 뒤져보니 자세히 그려진 조선지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몰래 꺼내어 관음포에서 강진바다에 이르는 곳(지금의 가청곡)을 푸른 물감으로 칠하여 바다와 같이 해놓고 다시 행랑 속에 넣어 두었다.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이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패하여 도망갈 때 왜놈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관음포에서 동남쪽으로 빠지는 곳이 바다인줄로만 들어갔다가 우리 수군에 의하여 크게 패하였다. 그래서 이곳을 일본군이 갇혔다고 하여 ‘갇힌곡’이라고도 하고 ‘가청곡’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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