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에 가장 알맞은 넉넉한 때는, 겨울과 밤과 비올 때이다. 남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때는 독서뿐 만 아니라 무엇을 해도 좋은 시간이다.
가을이면 우리 곁을 어김없이 맴도는 것이, 가을은 수확의 계절임과 동시에 독서의 계절이다. 등불의 심지를 돋우고 책을 가까이 한다는 ‘등화가친(燈火可親)’,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등은 책을 많이 읽기를 권장하는 말인데, 이 시대 어찌 꼭 남자에게만 국한된 말일까.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은 독서를 독려하는 성어로, 이제 독서는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다.
조선 초기 독서광인 김수온(金守溫)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전에 두문불출하고 글 읽는데 집중했는데, 용변을 보려고 밖에 나왔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고 하니, 얼마나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빠졌으면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몰랐을까.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치다 늙음도 모르는 공자(孔子)의 삶도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독서삼여’는 삼국지 ‘왕숙전(王肅傳)’편에 나오는 이 말은 독서하기에 적당한 세 가지 여가(餘暇) 즉, 겨울, 밤, 비올 때를 일컫는 것으로, 한(漢)나라 헌제(獻帝)때 학자로 이름난 동우(董遇)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어릴 때 집이 가난해 일을 해야 했는데, 하지만 책 읽기를 유달리 좋아하여 일하는 중에도 책을 끼고 다니며 독서에 열중했다고 한다. 동우는 황문사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랐는데, 신하가 임금에게 건의하고 청원하는 자리로 임금에게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더욱이 동우는 임금에게 경서(經書, 유교사상과 교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학문적으로 '좌전(左傳)'에 대한 그의 주석(註釋)이 유명한데, 동우는 주석을 써 넣을 때, 붉은 빛깔의 '주묵(朱墨)'을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주묵이라는 말이 어떤 글에 대한 주(註)나 가필(加筆), 첨삭(添削)을 뜻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깊어만 가는 밤, 진정한 독서삼여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동우가 말한 ‘독서삼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밤과 낮, 맑은 날, 궂은 날을 가리지 말고, 책을 읽으라는 경계(警戒)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허구한 날 여유가 생기면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일상(日常)을 잠시라도 벗어나 책을 끼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묵상에 잠겨 있을 때 풍성한 아름다운 가을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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