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학교가 들어서면서 느티나무 근처에 교장 사택을 짓고 담을 사이에 두고 나무 밑 빈터에 계사와 돈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자 닭과 돼지가 죽어 갔다. 그리고 초대 일본인교장 등천철부, 2대 교장 죽내좌충차가 부임한 후 그의 아들도 모두 죽고 말았다.
그 후로 목신제를 모시게 되었지만 교장이 나뭇가지를 자르다 이틀 후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중풍에 걸렸다고 하니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이 느티나무는 1990년대 초 태풍으로 고사된 것을 아리랑마을에서 다듬어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