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이 마을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전해져


열 평 남짓 너럭바위에 선명한 용발자국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해 돌산으로 날아간 용 이야기

용과 이 마을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용발떼죽(용발자국). 용이 날아오르면서 남겼다는 이 발톱자국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전설 속 용을 상상하게 만든다.

남면 선구마을에서 항촌마을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가면 한 켠으로는 드넓은 남해바다, 맞은 켠으로는 산머리부분에 듬성듬성 뾰족한 바위들이 솟아 있는 응봉산을 마주하게 된다.
산 곳곳에 솟은 바위와 날카로운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응봉산은 형세만 보면 투박한 남성을 연상케 하지만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머리 아래 8부 능선쯤 지고지순하고 애틋한 남녀의 사랑을 담은 전설이 깃든 곳이 있다. 정성을 다해 산능선과 비탈을 오른 뒤 ‘용발떼죽(용발자국)’을 찾아 빌거나 만지면 청춘 남녀의 사랑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전설을 가진 곳, 남면 항촌마을이다.
이 곳 용발떼죽의 아름다운 전설을 전해준 이는 이 마을 조기언(69) 어르신과 나이 지긋한 마을의 어르신들.
‘사랑이 이뤄진다’는 응봉산 밑 ‘용발떼죽’과 관련된 전설을 설명해 주고 있는 항촌마을 조기언(69) 어르신.

응봉산 8부능선 속에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아직 선명한 흔적이 남아있는 용발떼죽(용발자국)에 담긴 이야기는 이렇다.
아주 먼 옛날 항촌마을 뒷산(지금의 응봉산, 일명 매봉산) 칼바위 정상 아래 열 평 남짓한 너럭바위에 용 한 마리가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용이 살기 시작하면서 뒷산 칼바위는 짙은 운무에 쌓이는 일이  잦았고, 사람들은 자연히 이 산을 오르는 일을 꺼리기 시작했다.
과거 산과 산의 주인이 다름을 표시했던 경계석. 용발떼죽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습이다.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뵈는 뒷산 칼바위 아래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은 용은 어느날 우물에 물을 길러 나온 이 마을 처자를 보게 됐다. 마을에서도 착한 심성으로 칭찬이 자자했던 이 처자는 마음씨 못지않게 외모도 빼어났던 모양이다. 용이 보기에도 한 눈에 찰 정도로 아름다운 처자는 물을 긷다 용에게 낚여 뒷산 칼바위 밑 너럭바위 위, 용의 보금자리로 잡혀갔다.
처자가 용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은 금새 마을에 퍼졌고, 평소 그 처자를 속으로만 연모해 오던 이 마을 총각은 상사병에 걸려 곡끼를 끊었고 병세는 갈수록 깊어갔다.
여느때처럼 자욱한 운무가 뒷산 칼바위를 덮은 어느날 밤, 용에게 잡혀간 처자를 생각하며 시름시름 앓던 총각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용발떼죽에 오르기 전 소나무를 휘감은 넝쿨나무가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을 연상케 한다.

“그래. 병으로 죽으나 용에게 물려 죽으나 죽는건 매 한 가지다.”
결심을 굳힌 총각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밤, 뒷산 가파른 비탈길을 올랐다. 짙은 어둠 속 한치 앞도 뵈지 않는 산비탈은 오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수풀에 긁히고 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그렇게 온 몸이 찢기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용이 산다는 너럭바위에 오르자 용과 처자가 그 곳에 있었다.
이미 너럭바위까지 오르는 길에 젖먹던 힘까지 쏟아 부은 총각은 마지막 사력을 다해 용 아래 너럭바위에 앉은 처자에게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었다. 총각이 처자의 손을 잡는데 용은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만 볼 뿐 미동도 않았다. 온통 처자 생각뿐이었던 총각은 용이 어떻게 하건 말건 처자의 손을 잡고 다시 남은 힘을 짜내 마을로 내려왔다.
용에게 잡혀 갔다던 처자와 피투성이가 돼 마을로 돌아온 총각의 이야기는 뒤늦게 마을에 알려졌고, 뒤에 마을 사람들은 총각이 처자를 데려가는데도 용이 지그시 보고만 있었던 연유를 깊은 밤 험한 산길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올라온 총각의 정성과 사랑, 결기를 갸륵히 여겨 그냥 보고만 있던게 아닐까라고 짐작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용은 뒷산 너럭바위를 떠나 자취를 감췄고, 이때부터 용발떼죽은 사랑을 이루고픈 청춘남녀가 있다면 이 곳에 올라 용발떼죽에 빌거나 만지면 그 사랑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항촌마을 한 어르신의 설명을 덧붙이면 용이 살았다는 칼바위 아래 너럭바위는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 적 뗄감하러 산에 올랐다 평평한 용발떼죽 너럭바위에 지게를 벗어놓고 땀을 식히며 낮잠을 청하며 여유를 만끽하던 곳이기도 했고, 이 곳에 살던 용은 바위를 박차고 날아 올라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로 처소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과거 여수와 왕래가 잦았던 이 마을 뱃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실제 이 마을 용이 날아가 자리잡았다는 여수 돌산읍 우두리 해안 절벽에는 용발떼죽 너럭바위에 남은 흔적과 유사한 모양의 날카로운 것에 할퀸 듯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항촌마을 응봉산 산자락에 숨은 용발떼죽 전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여수 돌산읍 우두리 해안 절벽은 용발떼죽에서 바로 바다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어 맑은 날 용발떼죽 너럭바위에서 여수 쪽을 바라보면 눈으로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움주신 분 - 남면 항촌마을 조기언 어르신, 조금영 이장
/홍재훈 전문기자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