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보름달 만큼이나 마음도 풍성해지는 추석이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백발 성성한 고향의 노모(老母)는 명절 쇠러 천리 길을 달려올 아들·딸과 손주들 볼 생각에 시집오던 그 날처럼 마음이 먼저 설렌다. 추석 대목장은 그런 설레임들로 가득하다. 그런 설레임이 모인 장마당 곳곳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친다.
“객지 사는 아들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게 마른 괴기라…. 요나(여기나) 된께 묵제, 오데 객지서 마른 괴기 살데나 있는가?”
읍 장날 어물전에 나온 고현 대곡 사신다는 아지매는 이렇게 말하며 아들 생각이 앞섰는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홍홍 웃음부터 터트린다. 올해는 여름이 참 뜨거웠던 탓일까. 지난 7일 읍 장날은 어물전은 춤추고 채소전은 잠자는 듯한 인상이다. 가뭄으로 채소 몸값이 오른 탓에 채소전 곳곳은 값을 놓고 파는 이와 사는 이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오른 채소 몸값 탓일까 어시장에 비해 손님 발길이 뜸한 채소전 한켠 고구마순 껍질을 다듬는 상인 아지매는 푸념을 섞어 타령처럼 읊조린다.
“오늘 장사는 틀맀고. 마른 괴기 파는 쟁이들 돈 버는 구경하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구경이나 실컷 해야것네”라고.
참깨, 들깨 볶고 고춧가루 빻는 방앗간에는 고소한 내음과 코 끝을 싸하게 하는 알싸함이 가득하다. 햇볕에 며칠을 널어 말리고 수건으로 얼마나 닦고 또 닦았는지 반질한 윤기가 흐르는 고추는 기계를 거치자 원래 제 몸빛보다 더 붉은 가루가 돼 대야에 담긴다.
“아들네 지름 한 병, 딸네 지름 한 병, 우리 영감 할매 묵을 지름 한 병. 매느리가 용돈 좀 주고 가면 세 병 다 아들 줄 수도 있고.” 녹색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병을 가리키며 웃는 할매의 입담이 참기름만큼이나 구수하다.
찾는 이가 늘자 상인들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핀다. 덩달아 상인들에게 비닐봉지를 파는 아재도 신이 나 좁은 시장골목을 이리 저리 누비고 다닌다. “지나가입시더~~!”를 있는 목청껏 외치며 말이다.
참! 올해는 한 번도 들여다 본 적 없었던 시장 옆 미용실도 들여다 봤다.
“머리가 부스스하모 아들, 매느리(며느리) 내리와서 울 어매 폭삭 늙었다고 뭐라 칼까봐 지지고 볶고 하는기제”라고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넉살좋은 어매가 입을 열자 제 순서를 기다리던 어매들이 웃음소리가 미용실 안을 쩡쩡울린다. 추석 대목 장날 미용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은 본지 김인규 기자는 이 미용실을 ‘손주맞이 할매파마 제작소’라고 이름을 지었다. 작명실력이 꽤 괜찮다.
머리에 사과 박스를 이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어매는 뭣을 샀을꼬. 꽤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이고도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신선같다. 올해 추석 대목 장날 풍경은 그랬다. 늘 그렇듯 시골장은 사람내음이 가득하다. 지갑은 얇아도 마음만은 풍성하게 하는 대목장날 풍경이다.
/정영식·김인규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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