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용소(龍沼)
용(龍)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용소(龍沼)
  • 정영식 기자
  • 승인 2016.09.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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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전설을 찾아서 - ① 이동면 용소마을>

호구산 정기와 푸른 앵강만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그 곳

▲과거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용소(龍沼), 예전에는 명주실타래 세 꾸러미를 이어 물 밑으로 내려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예전의 모습보다는 많이 메워진 상태고 주변 수풀에 가려 소(沼)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龍)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역대급 전설의 주인공이다.
용의 전설은 서양에서는 착한 공주를 잡아 성에 가두고 그 성을 지키는 ‘악(惡)’ 의 대명사로 통용되지만 우리네 역사나 전설,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 속 용은 상상 속의 동물답게 영험함과 신비로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국내 각 지명 속에 녹아든 용의 전설이나 이야기는 그 어느 동물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 국립지리정보원이 조사한 전국의 용 관련 지명만도 1천 2백여 곳이 넘을 정도고 용에 이어 말이 두 번째로 많고, 세 번째가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다.
남해군에도 용과 관련된 전설을 가진 곳이나 용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 몇몇 곳 있으나 용과 호랑이 관련 전설이 함께 살아 숨쉬는 이른바 ‘레전드 오브 레전드’급 마을이 있다.
남해군 이동면 소재지를 지나 남면 방면으로 약 5km 가량 가다보면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 ‘호구산(虎丘山)’(납산으로 불리기도 한다)으로 불리는 한 눈에 보아도 기운 좋은 산세를 자랑하는 산자락 끝에 치마폭처럼 펼쳐진 앵강만이 한 눈에 내다뵈는 마을 하나가 있다. 이동면 용소마을이 바로 그 곳이다.
용소마을 본동을 지나 남면방향으로 가다 미국마을로 들어서는 길머리를 조금 지나면 왼편으로 내(川)가 흐르고 앵강바다 쪽으로 약 100m 가량 논두렁을 타고 가다 보면 우거진 소나무 숲에 쌓인 깊은 골짜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이 이 마을 이름이 유래된 용이 살았다는, ‘용소(龍沼)’다.
▲용소마을, 용의 전설을 전해주신 이 마을 박종덕 어르신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메워져 얕아졌으나 이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 적까지만 해도 물이 시퍼런 빛을 띠고 있을 정도로 깊었고 이 어르신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의 일설에 의하면 용이 살았다는 웅덩이는 ‘명주실타래 세 꾸러미를 이어 넣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곧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의 박종덕 어르신은 “물이 시퍼렇게 보일 정도로 깊은 소(沼)에 오래전 용이 살았는데 냇고랑(냇가의 남해 사투리) 상류에 있는 용문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아지자 자연히 밥도 많이 지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절로 쌀뜨물도 많이 나왔던 모양이라. 그 쌀뜨물을 용문사 계곡에 흘려보내니 그 물이 용소로 내려가고 용이 그 쌀뜨물 냄새에 비위가 상했는지 이 곳을 떠나 전라도 남원 모처로 갔다더라고…. 오래전 용문사 노승(老僧)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듣고 자랐지”라고 전했다.
박종덕 어르신의 말대로 지금도 용문사 종무소 옆에는 신도들이 많이 운집하는 법회나 대작불사를 회향할 때, 임진왜란 시에는 승병들의 밥을 퍼뒀던 그릇으로 쓰였다는 둘레 3m, 길이 6.7m의 통나무 속을 파낸 ‘구시통(구유)’이 있는 것을 보면 어르신이 전해들었다는 용문사 노승들의 이야기와 용소의 전설이 맞아 떨어지지 않나 하는 짐작이 든다.
▲용문사에서 내려온 쌀뜨물을 피해 전라도 남원으로 갔다고 전해지는 전설과 맞아떨어지는 용문사 ‘구시통’의 모습
용문사에 보관된 ‘구시통’은 경남유형문화재 제427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이 마을 유래에 얽힌 용의 전설을 대략 이 정도지만 용소마을에는 마을 지명과 관련한 또다른 구전도 이어져 온다.
용소마을을 크게 본동(本洞)과 안치(길마재), 내곡(內谷, 안골), 봉전(鳳田, 새마을, 신촌) 등 네 뜸으로 나뉜 자연부락이 모여 한 마을을 이루는데 마을 양 옆으로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등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동편의 산등성이는 ‘독묏등’, 서편의 것은 ‘개묏등’이라고 불린단다.
이 독묏등과 개묏등이 호구산 자락 끝 낮은 산등성이 두 개와 합쳐 사각형 모양으로 마을 네 귀퉁이를 만들고 그 등 안으로 용소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위에서 보면 그 네 개의 등이 과거 베를 짜던 베틀다리처럼 보인단다. 마을은 그 안에 베를 짜는 곳 안에 앉은 형국이다.
이 마을은 여느 시골마을처럼 5~6개 성씨(姓氏)가 모여 사는, 집성촌(集成村)이다. 파(派)는 다르지만 현재 마을에 사시는 분들만 놓고 보면 진주(진양) 강(姜)씨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김 씨, 박 씨, 송 씨, 양 씨, 제 씨 순 정도로 이 마을에 모여 산다.
알다시피 예부터 베를 짜는 일은 마을 아낙들의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강(姜)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 성 씨 안에 계집 녀(女)자가 들어있어 이 마을에서 부자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용소마을 뒤 호구산 자락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용문사가 있다. 용문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만큼 수없이 많은 문화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용문사 대웅전은 2015년 12월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실제 이 마을에 모여 사는 5~6개 성씨 중 강(姜) 씨 성을 가진 집들이 부자가 많다고. 이 마을 이장을 십 여년 넘게 지낸 양영호 어르신의 설명이다.
굳이 강 씨 성이 아니라도 여성이라면 이 마을에서 부자의 기운을 담뿍 받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호랑이가 엎드려 마을을 뒤에서 감싸고 용이 살던 소(沼)를 따라 앵강만의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곳, 용소마을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를 이 곳에 옮겨와 지었다는 천년고찰 용문사를 비롯해 전형적인 농촌 풍경 속에서 이국적 정취도 함께 느껴 볼 수 있는 미국마을(아메리칸빌리지), 또 마을에서 멀리 앵강만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대표적 문인인 서포 김만중 선생의 마지막 숨이 녹아있는 선생의 유배지, 노도 등 주변에 볼거리도 많은 곳이다.
▲도움주신 분 - 이동면 용소마을 박종덕, 양영호 어르신, 남해군 기획감사실 양명신 주무관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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