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면 사학산 전경

▲궁지목
약 200년 전 관당마을에 성품이 강직하고 성격이 온후할 뿐 아니라 성실하여 마을사람들로부터 신임과 사랑을 독차지한 ‘궁철’이라는 총각이 살았다. 그리고 규수로는 미모와 성격이 남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지금’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어느 날 지금이 밤중에 등을 넘어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언니집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마을 앞은 포구라 마을을 벗어나려면 마을 옆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중간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 가야 했다.
능선 중간쯤을 지날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서웠지만 궁금하기도 하여 그곳을 보니 같은 동네에 있는 궁철이라는 총각이었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도 만남을 갖기는 어려웠지만 아는 처지라 서로 인사를 했다.
그 후 차차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매일 보지 않으면 안 될정도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서로는 처음 만난 그 능선 숲 속에서 백년가약을 맺는 꿈을 꾸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이 꿈에 대한 소문이 동네에 번지기 시작하면서 물의를 일으키자 둘은 이 능선에서 서로의 목을 졸라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능선 숲을 총각 이름의 앞 자인‘궁’자와 처녀 이름의 앞 자인 ‘지’를 따서 ‘궁지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밤이나 낮이나 이곳을 지날 때는 무서워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산등성이가 목같이 뻗어져 있었고 대국산과 이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끊어져 논과 밭이 되어 조그만 목만이 남아 있다.

▲장군바위
지금의 탑동마을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산 위에 큰 바위가 둘로 쪼개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바위를 이름하여 장군바위라 한다. 약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대국산성을 지키고 있던 천장군이 싸움에서 이길 것인가에 대하여 고심하던 차에 어느 날 꿈 속에 하얀 도포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항상 싸움을 그렇게 하면 패한다. 정성을 다해 3일기도를 해야 한다.”
노인이 떠난 며칠 후 3경쯤 되어서 장군은 목욕재계를 하고 남산바위인 이곳에 와서 정성들여 기도를 마치고 마음을 가다듬고 칼을 들어 이 바위를 내리치니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그 뒤에 왜놈에게 깨끗이 복수를 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그 바위는 장군바위라고 전해오고 있다.

▲사학산
갈화마을 뒤편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 사학산이다. 이 산에는 옛날에 숲이 울창하여 여러 종류의 새가 많이 살았다. 그 중에서도 학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났다. 얼마나 큰 산불인지 아무도 끌 수가 없어 쳐다보고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산에 나무가 불에 타버려 없어지니 학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네 마리의 학은 떠나지 않고 이 산에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먹이조차 구할 수 없어 이 네 마리의 학은 어느 겨울날 산봉우리에서얼어 죽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네 마리의 학을 상징하여 이 산을 사학산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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