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세상은 여성과 남성의 두 수레바퀴로 돌아간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남성이다.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알려진 남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풀뿌리 자치의 최일선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여성 이장들을 통해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짚어보고자 이야기자리를 가졌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여성이장들의 대화를 요약 정리한다. 좌담회는 지난 1일 읍 소재 한 식당에서 있었다.<편집자 주>
 

 

 
지난 1일 군내 여성 이장 3명이 모여 우리 지역 여성들의 사회진출 참여 확대를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이 날 이장들은 “후배들도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좌담회 참석자>

박정순(읍 북변1리 이장)
김정애(읍 서변리 이장)
강향년(창선 상죽리 이장)
진행 한중봉(남해신문 자치담당)

여성들의 장점, 사회발전 동력 삼아야

한중봉 :
마을일로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좌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여성으로서 이장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박정순 : 제가 이장 일을 처음 맡은 97년에는 군내 여자 이장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에 마땅히 이장일을 할 만한 분이 안 계셔서 반장일과 마을부녀회장, 읍 부녀회장을 맡아온 저에게 주위에서 권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결심을 하게 됐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해 맡게됐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우리 마을 분들의 깨어 있는 의식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어른신들을 부모처럼 모셔온 것이 인정받은 이유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김정애 : 박정순 이장님이 길을 터 줘 상죽이장님이나 저나 일하기 수월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마을은 53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지만 농가가 많지 않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장을 맡기 전에도 새마을부녀회 등을 통해 김치 담가주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으나 이장을 맡게되면 더 많은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도전하게 됐습니다. 실제 남성 이장님이 소홀히 하셨던 부분을 여성 이장들이 잘 챙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강향년 : 저는 부업으로 카메라 촬영 등의 일을 하면서 남해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이런 것은 우리마을에서도 해 봤으면 하는 모범적인 사례 등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 부녀회장을 2년 동안 해 왔는데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위 분들과 상의해 도전하게 됐고 당시 상대후보가 사퇴해 큰 어려움 없이 이장 일을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한중봉 : 실제로 해 보면 생각과는 달리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강향년 : 제가 이장을 맡은 지 3일만에 마을에서 초상이 나더니 1년새 11명이나 돌아가셨는데 참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여기 저기서 여자 이장 운운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고생 많다고 위로해 주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처지라도 아마 남자 이장이었다면 최소한 이런 소리는 안 들었을 것 아닙니까?

이런 마음 고생 때문에 한때는 마을방송을 하다가 울음을 참지 못해 방송을 중단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공사 감독같은 것은 전문지식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고 주민들의 불만도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섬세함으로 마을회관과 복지회관 관리, 창고 정리, 독거노인 보살피기 등은 잘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것도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김정애 : 때에 따라서는 외조도 필요한데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장애가 됩니다. 저를 김정애란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아내로만 보려 하는 고정관념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지역 아직까지 여성 참여 미비

한중봉 : 우리 지역 여성의 사회참여 정도가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

김정애 : 이전에 비해서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아직도 많이 저조한 편입니다. 박정순 이장님만 봐도 남해 최초로 여성 농협이사를 맡고 있고 저도 남해읍청소년선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차츰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하지만 아직도 저조하고 이를 가로막는 요인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가령 몇 년전만 해도 각종 위원회의 여성참여 비율을 20%까지 늘린다고 했는데 요즘은 토지평가위원회 정도에서나마 그것이 지켜질까 다른 곳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사회단체장을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하는 풍토도 여성들의 사회 참여 진출을 가로막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박정순 : 여성 스스로 자질과 능력 배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떤 일을 맡게되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여성이라고 일정 부분을 맡긴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면 확실히 나아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먼저 일하는 지금의 여성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 스스로 능력과 자질 키우는 노력 필요

한중봉 : 여성이 사회참여를 활발히 하기 위해 이런 부분들은 고쳐져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강향년 : 무엇보다 스스로 자질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인정하고 밀어줘야 합니다. 우리 지역은 특히 ‘네가 할 수 있겠어’ 하고 아예 참여 자체를 막아버리는 이상한 정서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꼭 고쳐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알고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이장들이 있는 동네는 분위기도 화기애애한데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 이장들을 더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여성 이장이 있는 마을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박정순 : 여성 스스로 도전정신과 개척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성지도자 과정이나 다른 시군과의 교류 등을 통해 이를 우리 지역에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이 뒤따라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군 전체 발전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는 여성도 나와야 하고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의회 등 다양한 분야 진출해야.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

한중봉 : 후배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정순 : 지난해에는 그래도 여성이장이 4명이었는데 올해는 오히려 줄어들어 안타깝습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질을 높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성들의 봉사정신과 엄마의 포근함 등이 사회에서 발휘되면 사회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강향년 : 도전하면 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깨끗하게 바르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성들이 특유의 봉사정신과 모성애가 한 마을을 더욱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김정애 : 농가가 많은 면단위 지역의 이장님들은 아직까지 영농회 업무가 많다보니 여성으로서 이장직을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농가가 많지 않은 지역은 특별하게 힘을 쓸 일도 없고, 또 자발적으로 나서면 마을 분들이 도와주는 만큼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은 장례가 집보다 예식장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어 여성들이 이장 일을 하기에 큰 걸림돌이 사라졌습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한중봉 : 끝으로 한말씀 하신다면.

박정순 : 의회나 다른 분야에도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뜻을 펼쳐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언론 등에서도 앞으로 여성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김정애 : 마을일을 해 보니까 쓰레기 처리 문제가 쉽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의식이 깨어합니다.

강향년 : 면단위에서는 여성들이 할만한 일거리나 여가 프로그램이 없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주었으면 합니다.

한중봉 : 좌담회에 참석해 주서서 감사합니다. 우리 지역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더욱 두드려지길 바래봅니다.

정리 한중봉 bagus10@hanmail.net
사진 한회연 기자


좌담회 뒤안길>

‘울분’과 ‘희망’이 교차한 이야기 마당

좌담회는 이장으로서 일하게 된 계기와 어려운 점, 남해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에 대한 평가와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마련됐다.

오후 1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좌담회는 그동안 가슴속에 둔 울분(?)을 같은 여성 이장에게 토로하는 시간이자 여성들의 사회 참여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또한 후배들을 위해 더욱 모범적인 이장 활동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세 이장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 스스로의 노력과 사회구성원들의 시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 제도적으로도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이를 위해 인센티브 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장은 “최근 이장 수당 등의 증가로 갈수록 이장 선거가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며 “진정한 봉사자로서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과 능력,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이장이 돼야 할 것”이라 목소리를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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