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오전 9시 30분 도착한 상하이(上海) 푸등(浦東)공항의 하늘은 푸르렀다. 중국을 세 번째 방문한 나는 중국에도 이렇게 맑은 날이 있나 싶었다. 언제나 습하고 흐리게 내려깔린 중국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제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香港)을 영국에 양도하고 상하이를 무제한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상하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발전하여 서울 면적의 10배에 인구 3천만 명을 자랑하는 중국의 주요산업,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황포강 동쪽에 신도시가 들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황포강 서쪽 푸시(浦西)가 서울의 강북이라면 황포강 동쪽 푸등(浦東)은 강남인 셈이다.
첫 번째 목적지인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로 향하는 11인승 벤츠 리무진은 흔들림 없이 조용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휴식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 일행은 한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청사 맞은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임시정부청사는 중국 상하이 신텐디(新天地)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길게 늘어선 12가구의 연립주택의 4호와 5호가 당시 청사였다. 좁은 계단을 따라 김구 선생 집무실과 요인숙소, 다양한 전시패널을 둘러보았다. 2015년 9월 4일 재개관 이전까지는 기념품판매장이었던 곳에는 더 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패널을 배치하였다고 한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1926년 개청되어 1932년 4월 29일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일본왕의 생일을 맞아 열린 전승경축식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투척하는 의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 대세에 의하여 나라의 독립은 머지 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마지 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
윤봉길 의사의 명언을 되새기며 발길을 돌렸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애국자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모였던 애국혼의 산실은 초라했지만 대한민국의 국적을 지닌 우리에게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저녁까지 시간이 남은 우리는 예원(豫園) 옛거리를 찾았다. 예원은 첨단도시 상하이에 숨겨진 중국풍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로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보다 큰 중국만의 거리였다. 중국의 소상품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우리는 거리의 풍경만 훑어보면서 쇼핑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일행은 예원을 벗어나 맞은편 공원에 앉아 나른한 오후의 더위를 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태양이 서쪽하늘을 지나 자취를 감출 무렵 황포강(黃浦江, 황푸지앙)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서쪽의 와이탄(外灘)거리를 지나 유람선에 올랐다. 기원전 262년 초나라왕은 황헐(黃歇)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상하이 지역을 하사했다. 당시 상하이 지역은 비만 내리면 잠겨버리는 폐허였다. 그는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강을 동해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백성들은 홍수의 재난을 피할 수 있게 되자 이 강을 황헐포라 불렀다. 이 황헐포가 나중에 황포강이 되었다.
멀리 푸등의 동양의 지주라 불리는 동방명주탑(東方明 珠塔)의 현란한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1994년에 완공된 높이 468m의 TV송전탑이었지만 지금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긴 막대기에 꽂힌 세 개의 구슬은 상하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오른 쪽에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120층 632m의 상하이타워(상하이중신다사, 上海中心大厦)가 구름에 가리워져 있다. 용이 승천하는 듯 360도를 비틀며 올라가는 상하이타워는 현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다음으로 높은 건물로 2015년 준공되었다.
유람선은 푸등의 마천루 같은 빌딩숲과 푸시의 외탄을 끼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출발지로 돌아왔다. 저녁 10시까지는 빌딩의 조명을 밝혀야 하는 의무가 있단다. 중국은 역시 사회주의 국가가 맞았다.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황포강의 야경은 조명을 밝혀놓아야 하는 의무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무수히 스쳐가는 크고 작은 유람선들 역시 조명이 화려했다.
관광객이 많지 않을 법한 월요일 저녁인데도 황포강 유람선 선착장은 북적였다. 비록 저렇게 멋진 야경은 없지만 상주포구, 미조항, 노량해협의 유람선에 관광객이 북적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같이 고민하면서 40여 분을 달려 푸등공항 인근 호텔에 도착했다. 바쁘지도 느리지도 않았던 남해서복회 일행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김성철 남해서복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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