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이 뽑듯 시인 면허증을 반납하고 시와는 담 쌓고 남남으로 사는데 우연히, 아주 우연히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팔삭둥이가 [聖오마니!]”다.

이 속에는 1권 발간이후 매년 시집을 펴던 시인이 3년의 시차를 두고 6집을 펴낸 속내가 가감없이 담겨져 있다.

문인의 명예욕적인 시선과 삐딱한 곁눈질에 ‘시는 명예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닐뿐더러 의사시인이라는  틀에 갇힐 뜻이 없음’을 절필로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주 우연히 지인의 청을 뿌리치지 못해 서재에서의 오랜 동면을 깨고 세상 밖으로 뭉치 채 튀어 나온 게 [聖오마니!]다.

하여 44편의 시들은 [어린순례자]보다 늦게 빛을 봤지만 사실은 원고위에 먼저 발을 디뎠었다.


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 전이적이고 넓으면서도 깊다. ‘그 누가 유리창에 시린 창자만 그려 넣었나!’ 집도하는 순간, 손이 금방 빙어처럼 시려져 온 몸으로 냉기가 퍼짐을 느낀다.

노아의 대홍수, 참혹한 전장의 포성에도 끄덕 않고 똥을 빚어 빵을 굽는 쇠똥구리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징표임을, 세월의 무게도 역경의 짐도 쾌념치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성인임을 꿰뚫는다.


김 향우는 [어린순례자] 이후 절필하고 나서부터 깊은 침잠에 빠져 시심을 발효시키는 중이다. 끊임없이 담금질 하면서 자연인으로서 시가 나를 찾을 때까지, 솟구쳐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터질 때까지 몸과 가슴을 내버려둘 참이다.

정년퇴임을 4년 앞둔 요즘 오로지 의사의 직분에 충실한 뿐이다. 낚시광인 그가 서재를 박차고 주말마다 바다로 달려가는 까닭이 물고기에 매달려 올라오는 시어들을 만나는 기쁨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4년 뒤가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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