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TV프로그램을 즐겨보지 않는 필자가 요즘 매주 금요일 밤마다 TV 리모컨을 붙들고 재미지게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음악방송 전문채널인 엠넷에서 방송 중인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초창기 아시아권에 국한된 ‘한류’ 수준을 뛰어 넘어 월드클래스로 자리잡은 대한민국의 K-POP(케이팝) 열풍에 맞춰 국내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 소속된 101명의 ‘소녀연습생’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각자 넘치는 ‘끼’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재미와 더불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쏠쏠한 재미는 ‘국민프로듀서’라는 이름의 시청자들이 투표를 통해 이들 연습생의 잔류와 방출을 결정짓는 서바이벌 경연 포맷이라는 점이다.
“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라!”라는 프로그램 카피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오는 4.13 총선에 나선 후보들의 선거구호와 맥이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국민프로듀서’의 선택을 받은 최종 11명이 걸그룹 데뷔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총선 후보들의 입장을 함께 병치시켜 보면 이번 총선은 ‘국회판 프로듀스 300’이 아닐까.
방송에서는 ‘편집’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 이들 ‘소녀연습생’이 흘리는 땀과 눈물을 조명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참가자들간의 갈등을 부각시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올리고 관심을 지속시킨다. 어떤 때는 함량미달인 것처럼 보이는 방송 참가자가 피나는 연습 끝에 한단계 한단계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다수가 10대 중후반인 어린 소녀들이 보여주는 한 편의 성장드라마 같은 방송의 스토리보드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 맨다.
반면 ‘국민의 선택’이라는 결정의 기준은 같으나 우리 지역내에서 보여지고 있는 ‘국회판 프로듀스 300’의 모습은 방송이 지닌 흥밋거리 하나 없이 진부한 정치혐오와 선거무관심만 양산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인 새누리당 경선과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각 후보들이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할 당시까지만 해도 각자의 지역발전 비전과 공약을 밝히며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엔 상호비방과 흑색선전, 후보간 고소·고발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최근 경선 여론조사 실시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와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이에 따른 공천 결정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각 후보의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한 밴드나 카카오톡에서 빚어지고 있는 흑색선전의 수준은 혼탁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당 경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소속 예비후보들이 보여준 전반적인 행태는 10대 소녀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시청자가 느끼는 감동의 1할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선거의 주체는 유권자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정한 선거 의제나 여론전에 따라 유권자는 언제든지 쉽게 흔들리고 현혹될 수 있는 ‘우매한 대중’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오만함마저 느껴져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다시 후보들에게 촉구한다. 당선의 영예는 후보들의 것일지 모르나 선거의 주인은 유권자, 주민이어야 한다. 흑색선전과 비방을 멈추고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프로듀서’의 선택을 받으라.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