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의미로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얼굴에 철판 깔고 어림없는 짓도 마다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한 마디로  철면피(鐵面皮), 즉 쇠로 만든 낯가죽, 뻔뻔스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얼굴 가죽이 두껍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다’는 의미와 같이, 비슷한 말로 ‘낯가죽이 두껍다’, ‘낯이 두껍다’, ‘면피가 두껍다’ 등 뻔뻔함의 극치를 나타내는 말들이 즐비하다.
후안무치의 유래는 중국의 하(夏)나라 계(啓)임금의 아들인 태강(太康)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는데,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 중 막내가 불렀다는 노래에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 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라는 대목이 있는데 ‘후안’이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 즉,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을 더하여 ‘후안무치’라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편 교언(巧言)에도 “생황(笙簧)과 같은 공교로운 말은,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지(교언여황巧言如簧 안지후의顔之厚矣)”하는 대목인데, 전체 여덟 행중 마지막 두 행으로, 생황은 17개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대가 통에 둥글게 박혀있는 관악기이다.
선(善)한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생황과 같은 공교로운 말이 어찌 입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듣기 좋게 꾸며진 말을 뜻하는 교언여황(巧言如簧)이나 교설여황(巧舌如簧)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를 살다간 이종오(李宗五)가 지은 ‘후흑학(厚黑學)’은 뻔뻔하고 음흉한 처세술을 논한 책으로 ‘후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줄여서 조합해 만든 말로써, 어쩌면 ‘인면수심(人面獸心 본지'14.6.27보도)’과 상통하지 않을까. 우리말에도 ‘얼굴이 두껍다’거나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치(恥)자는 이(耳귀)에다 심(心마음)을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이다. 남의 비난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에서 ‘부끄러워하다’는 의미로 쓰여 지고 있다.
부끄러운 얼굴은 마치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고 뻔뻔하다는 후안무치, 생각보다 몰염치하고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고 한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인면수심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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