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 남해가 아니라 다른 지역이었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관광콘텐츠로 만들려고 기를 쓰겠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섬 아닌 섬이라 그런지 엄청난 자산이 발굴되었는데도 조용하네요.”

#2)
“남해에서 고려대장경이 조성되었다고? 하여튼 요새는 뭐 조그마한 건수만 있으면 침소봉대하려는 게 지방자치단체들 특기아냐.”

고려대장경에 대한 연구는 대장경의 구성과 저본 및 판각에 대한 서지학적 연구가 중심이 되었다가, 1990년대 이후 대장경 조성의 사회적, 사상적 기반에 대한 연구, 대장경의 불교학ㆍ불교사(사상사)적 연구에 이어 최근 판각공간인 조성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경남도와 남해가 중심이 된 판각공간에 대한 연구는 고려대장경 조성에 대한 사회적, 사상적으로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필자도 몇 년 전 고려대장경이 남해 고현 일대에서 판각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2)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고현 관당들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되는 보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가지지 않았다. 그 때는 강화도 제작설이 뇌리에 꽉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발굴조사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할 만한 안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때부터 다시 기존의 연구와 관련 세미나 자료들에 간헐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 남해군에서 용역한 남해분사도감 제작과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보면서 ‘아, 이런 엄청난 사실들을 모르고 기존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공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1)의 말씀이 지당함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은 개인 연고와는 무관하게 연구 성과에 따라 기존 역사 해석의 오류를 바로잡기를 바라는 순수한 연구자적 입장에서 나오는 아쉬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고려대장경을 연구하면서 그 먼 남해까지 오가면서 알게 모르게 생긴 남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또다른 표현이기도 하였다.

고려대장경은 과거의 화석화된 역사유물이 아니라 현재적 가치로 재해석되고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고려대장경의 현재적 의미를 선행 연구자들이 정리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굳이 유네스코문화유산의 지정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자 문화의 정수이다. 1200년대 판각한 원판이 천년이 지나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경이롭다. 둘째는 대장경은 불교 경전의 내용은 물론 13세기 중엽의 역사 및 문화를 밝힐 수 있는 문화원형이다. 당대역사와 불교문화, 출판 인쇄술, 국문학, 서지학 등 다양한 학문연구와 고려왕조실록 복원의 원천 텍스트로 가치를 부여받는다. 셋째는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기억의 시대에서 기록의 시대를 열어 제친 사건이었다. 몸짓의 시대에서 벽화시대, 그림시대, 문자시대를 거쳐 영상시대에 진입했다. 영상시대의 기반은 인문학이자 문화원형(전형)을 기반으로 한 창의력과 상상력이 될 것이다. 그 원형의 무궁무진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고려대장경이다. 넷째는 문화원형 콘텐츠로서 역사, 문화, 관광, 축전 등 다양한 실용적인 개발자원으로도 활용가치가 높다.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고려대장경의 판각이 남해에서도 이루어졌음이 밝혀지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서 남해판각문헌은 종경록 등 여러 곳에서 나타남이 밝혀졌고, ??동국이상국집??이 남해분사도감에서 간행되었으며, 대장경 판목 주조의 엄청난 재력을 확보하기 위해 혜심과 만종이 단속사 주지가 되었으며, 일연스님이 남해 정림사에 머무는 등의 역사적 정황도 있다. 게다가 원로미술사학자는 자신의 40년 주장인 강화판각설에서 남해와 동시 판각설로 수정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이미 학계에서는 점점 남해판각설이 확산되어 감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이 사실은 널리 통용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통설을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해신문은 지난 2014년 10월 17일 사설을 통해, 고려대장경 판각지 복원사업의 신중한 관광자원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유로는 남해 판각설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 역사성과 사실성의 객관화가 진행되어야 하며, 고려대장경 판각지 문화관광 인프라 구축 사업의 총 180억원에 이르는 예산 재정부담을 들었다. 전자는 학술회의와 발굴조사로 하나씩 그 성과를 이루어가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은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역사의 소비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이다. 고려대장경 남해 판각의 역사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지난 7월에 민간단체로서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가 창립되었고, 10월 6일에는 화방사에서 ‘고려대장경 판각지 발굴복원 성역화 염원 화방사 국악한마당’이 펼쳐졌다. 이런 만큼 군정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야 한다.
어디서부터? 이번 설에 고향을 찾는 향우들에게 알리는 홍보부터 말이다. 공자도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近者悅 遠者來)’고 했다. 남해대교와 창선대교에 현수막을 걸고 홍보 팜플렛을 만들어 배포해야 한다.
그럼 어디까지 홍보할 것인가? 당연히 현재 연구조사된 종경록 등의 기록과 기와편이나 역사적인 내용들까지이다. 소설과 과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남해신문 12월 24일자 사설에서도 밝혔듯이, 나라의 국보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의 판각지를 밝히는데 중앙정부에서 국비를 투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실행토록 하기 위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판각지로 추정되는 지역의 발굴조사 영역을 확대하고 문헌학적 연구조사가 심도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는 내용도 담아야 한다.
또한 2011년부터 2013년까지도 하동, 합천군과 함께 기념음악회와 대장경전시관 운영 등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지역연계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동군에서도 정안선생 관련 역사문화관광자원화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남해-하동-합천 등 서부 경남 일대를 고려대장경 문화역사관광벨트로 조성하기 위한 지역별 연계에도 남해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나서야 한다.
이것은 중앙적 사고, 중심부적 사고에 젖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유배지로서의 남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문화로서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고려 문화의 주도권과 진취성을 지녔던 문화 이니셔티브(Initiative)로서의 남해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여기, 21세기에도 남해 문화의 주변부가 아니라 다시 문화의 출발지로서 거듭 나는 지름길이다. 이것이 군민과 군정이 힘과 지혜를 모아 ‘고려대장경 판각의 비밀’을 풀고 적극적인 역사바로알리기 홍보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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