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세밑이 다가오면 서울의 명동거리에는 어김없이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려 펴지고 전국의 수많은 교회의 종탑에는 아기예수 탄생 2015년을 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아름다운 일류미네이션이 차가운 겨울날씨의 밤하늘에 불을 밝히게 된다.
이 지구상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교회가 있지만 과연 예수님이 임재하여 축복과 영광과 은총을 소나기처럼 내려 줄만한 교회가 얼마나 될까? 아마 하나님은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구의 대형교회가 아니라 산골 농촌의 이름 없는 가난한 교회를 먼저 찾아 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정말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의 작은 두 개의 교회를 본 적이 있다. 그 하나는 뉴질랜드 남섬의 관광지인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길가에서 만난 ‘선한목자교회’이다. 밀키(Milky)호수라고도 부르는 테카포 호수의 잔잔한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은 20여개의 예배석만 있었다. 오로지 교회건물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설교단 뒤로 난 창문을 통해서 바로 보이는 호수를 보자 예수가 물위를 걸어와서 교회로 들어올 듯이 느껴졌다. 그 경건함은 유럽의 대형교회에서 보는 웅장하고 금빛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교단과는 전혀 달랐다. 유럽의 대형교회가 위엄과 위축감을 주는 교회라면 그것은 안식과 안온함을 주는 교회였다.
다른 하나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서북쪽 송네 피오르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있는 ‘우르네스 목조교회’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교회로 800년의 세월을 비바람 속에서도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대도시의 번화한 빌딩가에 현대식 건물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자연 속에 안겨 조용히 서 있는 교회이다.
성(聖)과 속(俗), 자본주의 사회의 교회들은 성보다는 속의 길을 걷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욕이 교회문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성령은 교회문 밖으로 나간다. 예수님은 결코 화려한 제단을 바라지 않는다.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더 은혜로운데도 목회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라의 앞날과 신도들을 걱정해야 할 교회와 목회자들 가운데는 오히려 신들의 걱정을 받고 있는 우리사회 모습이다.
알라신의 이름으로, 더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살인과 폭력이 정당화되는 인류사는 비극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종교가 없어지는 날에 영원한 평화세계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김 동 규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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