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폐교운동까지 불사한다.”
‘상주면 주민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제출한 민원서의 요구사항에 적힌 말이다. 이 말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나는 작년 3월에 상주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학생수가 감소하여 폐교위기에 처한 학교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꿈을 품고 남해에 들어왔다. 단순히 상주중학교 하나만 살리는 꿈이 아니라, 상주면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교육마을로 만들어보자는 큰 꿈이다.
내 꿈은 지역민들의 지지와 도움 없이는 이룰 수 없다. 다행이 이번 민원서에도 밝혔듯이 “학교 살리기 방안은 지역주민 대다수는 찬성하고 적극 동조”한다. 그래서 마침내 올해 초 교육부와 협의를 거처 경남 최초의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한 결과이다. 지금 기숙사를 한창 짓고 있고, 내년도 신입생도 전국단위에서 선발하여 모집이 끝난 상태이다. 이대로 가면 상주중학교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행복학교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폐교운동’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뒤통수를 야무지게 맞은 기분이다. 지역민들이 앞장서서 ‘폐교반대운동’을 하는 사례는 봤어도 ‘폐교운동’을 하겠다는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


나는 상주중학교에 오기 전에 공립학교 교장으로 4년을 근무했지만, 그 전에는 줄곧 사립학교에 근무했었다. 상주학원은 내가 만난 네 번째 사학이다. 단언컨대, 상주학원은 지금까지 내가 근무했던 그 어떤 학교법인보다 행정이 투명하고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학교다. 이 작은 학교에 5억원의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9천만원 장학금 지급, 14회째 일본 해외수학여행으로 3억9천만원 지원, 학교스쿨버스 구입 2천6백만원 등, 그동안 이사장 개인 돈을 많이 기부해왔다. 최근에도 기숙사 짓는데 보태라고 2억원을 기부했다. 앞으로도 몇 억원을 더 내놓아야 할 처지이다.
이런 공적으로 작년에는 경남교육감으로부터 최우수사학 기관 표창도 받았다. 돌아가신 전임 이사장도 사회복지분야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국민훈장동백장, 경남지사감사패, 대통령 표창, 상주면민대상, 남해군민대상 등을 두루 받을 정도로 지역사회에 공헌한바가 크다.
그런데 왜 지금 내 눈앞에 이렇게 엄청난 불신의 회오리가 불고 있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면밀히 따져서 살펴보았다. 설립당시부터 최근에까지 의혹이 제기된 서류와 통장까지도 낱낱이 조사해보았다. 법적으로는 한 치의 잘못이 없었다. 경남도교육청도 이번 민원 사안을 바탕으로 특별조사를 실시했다. 역시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결론이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들도 벌써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어떤 정서적인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달 27일 상주면사무소에서 열린 상주면민들을 상대로 하는 ‘설명회’에 참석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교장으로서 내가 확인한 ‘사실’하고 너무나 달랐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사장은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개인 사업을 목적으로 학교를 이용하고 사리사욕이나 챙기는 부도덕한 사람이다. 그냥 듣고 있기에는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처음부터 정보공개를 요청하지 않았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의혹이 있다면, 이사장이나 학교 측에 먼저 ‘사실’을 확인했어야 옳았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나 지식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추정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섬뜩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학교와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주인’이라면, 민원서를 내고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먼저 대화를 시도했어야 했다. 이사장이 숨어있는 사람도 아니고 언제든지 나서서 해명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빨리 그런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날 주민 설명회 자리에서 추대 받은 5명의 공동추진위원장의 명의로 학교 측에 보내온 ‘정보공개요청서’를 받고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발신인이 ‘상주학원 재단환수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되어 있다. 나는 그날 분명히 설명회 자리에서 이번 사태를 중재하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표를 추대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상주학원 재단환수 추진위원회’란 말로 둔갑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토지공매를 막고 재산을 돌려달라는 목적이 아니라, 아예 학교법인을 인수하겠다는 속셈이었단 말인가? 너무나 충격적이다.
학교법인은 이사장 개인 사유물이 아니다. 재단환수라는 말은 국가를 상대로 법적인 공방을 벌이겠다는 말 밖에 안 된다.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서 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 과연 뭘까? 이러다가는 상주면 전체가 불명예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생겼다. 이런 파국은 막아야 한다.
교장으로서 나는 이번 사태를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싶다. 법적인 공방으로 가지 말고 만나서 대화를 하자. 우선 그들이 정보공개 요청한 서류는 성실히 준비하여 어떤 형태로든 설명하겠다. 가능하다면 전번 설명회처럼 전체 면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베트남의 호치민 선생은 “과거로 인해 미래를 망치지 말라”고 외쳤다. 지금 내 심정이다. 과거에 붙잡혀 상주면의 미래 청사진을 망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남해금산 교육마을’에 대한 큰 꿈과 비전이 있다. 이번 기회에 아픈 과거를 청산하고 상주면민이 대동단결하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재단환수추진위원회’라는 겁나는 이름을 버리고, 상주면의 화합과 상생을 이끌 수 있는 ‘남해금산교육마을추진위원회’로 그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의혹과 불신은 사람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어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이제는 만나자. 대화를 하자. 그리고 꿈과 희망과 미래를 노래하자.
/여태전 상주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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