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중학교, “내달초 판결에 의한 복직 이뤄질 예정”

지난 2011년 군내 모 중학교 비정규직 영양사로 재직하던 L씨가 급식자재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해고된 사건, 기억하실 독자가 얼마나 될까 싶다.
세간의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졌을지 모르지만 한순간 범죄자로 낙인찍혀 정든 직장에서 내쫓긴 채 ‘죄인 아닌 죄인’으로 만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L씨.
올해 8월 대법원이 L씨의 해고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내려 지난 2011년 이후 만 4년여가 넘는 길고 길었던 L씨의 법정 사투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 판결을 근거로 L씨는 그동안 꿈에서만 그리던 직장으로의 복직이 가능하게 됐다.
뒤늦게 알려진 L씨의 해고무효소송 승소 소식에 해당 중학교에 확인한 결과 학교 측은 내달 1일부터 L씨의 복직이 이뤄질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만 4년이 넘는 L씨의 외로운 싸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그리 쉽지는 않다.
시계바늘을 되돌려 보면, 지난 2011년 7월 당시 군내 모 중학교 급식소에서 비정규직 영양사로 재직하던 L씨는 사건 발생시점 해당 중학교 행정실장으로 재직했던 K씨 등 학교관계자로부터 학교 급식자재를 빼돌린다는 의심을 받아 같은 해 8월, 이 중학교 교장 S씨 등이 포함된 학교인사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해고됐다.
L씨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꾸준히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지만 학교 관계자 일방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의 해고 결정으로 인해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고, 이후 L씨의 해고를 주도한 행정실장 K씨와 학교장 S씨는 타 학교와 기관으로 발령이 나 자리를 옮겼다.
이후 상황은 설상가상이었다. L씨의 해고 의결 당시 교장으로 있었던 S씨의 후임 교장이 L씨를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것. L씨도 이에 맞서 학교 측의 일방적인 의혹제기와 이에 따른 해고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전임 학교장 S씨와 행정실장 K씨를 상대로 맞고소했고, 약 2년여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지난 2013년 L씨에 대한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허위공문서 작성 등 모든 혐의에 대해 무혐의 또는 무죄 판결을 내려 영양사 L씨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L씨의 해고를 주도한 행정실장 K씨는 급식자재 검수의 공동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품검수조서 등을 허위로 작성한 혐의가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원의 판결을 받았다. 이후 행정실장은 영양사와 물품검수에 대한 공동책임자임에도 그 업무상 부실의 책임을 영양사에게 전가해 해고 처분이라는 강도 높은 문책성 징계를 받게 했음에도 교육당국은 행정실장 K씨에 대해서는 고작 경고라는 처분만 내려 징계의 형평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또 이같은 법원 판결이 있은 뒤에도 학교 측은 “해당 판결은 L씨의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 형사적 책임에 대한 판단만 이뤄진 것일 뿐 복직근거는 될 수 없다”며 “L씨의 해고와 관련한 절차상 하자는 없다는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이나 도교육청내 법률 자문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삼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L씨에 대한 법원의 무혐의 및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해고 절차상 하자 없음’을 이유로 L씨의 복직에 대해 미온적인 해당 중학교의 태도에 L씨 측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하며 또다시 긴 법정 공방의 터널에 들어서게 됐다.
1심 판결을 거쳐 대법원까지 또다시 약 2년여의 긴 공방 끝에 대법원은 지난 8월, 1~2심의 판결 내용이 그대로 이어진 취지인 L씨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놓게 됐다. 길고 길었던 L씨의 ‘제자리 찾기 여정’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
L씨는 뒤늦게 알려진 해고무효소송 승소 소식이 전해진 뒤 <남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결국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간다)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했던 만큼 빨리 끝나겠지’라는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오래 돌아오면서 제 자신도 가족도, 주변도 참 많이 망가졌다.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열심히 일해 왔던 직장에서 몇몇 사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해고되고 더욱이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갖고 장난쳤다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과 ‘범죄자’로 낙인찍힌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 4년의 멍에를 벗어 던진 것만으로도 큰 산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내려놓은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L씨는 이어 “불의에 무릎 꿇기 싫어서 죽을 힘을 다해 견디며 싸워서 이겨냈다. 판결로 바른 사회를 지켜냈고, 승소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한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도 말했다.
L씨는 오는 2일 복직하게 될 직장에서의 각오를 묻는 질문에는 잠시 말문을 머뭇거리고 먹먹한 가슴을 내리 누르며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조심스레 내뱉었다.
“정말…정말 좋아했던 일이고 열심히 했던 일이었다. 그랬기에 지난 4년이 넘는 시간은 눈물로 직장을 그리워하고 아무일 없던 예전처럼 출근하는 꿈을 꾸는 것이 ‘악몽’이었던 세월이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간다는 설레임도 있지만 여전히 4년전 떠올리기도 싫은 일들을 만든 이들과 다시 만나야 하는 현실인 만큼 두려움도 크다. 하지만 꿋꿋이 예전처럼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된 만큼 밝은 마음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L씨가 학교에서 부당 해고된 2011년 7월 이후 그해 가을, 그간 학교장과의 고용계약으로 신분이 유지됐던 학교내 급식시설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경남도교육감과의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규정이 개정됐다. 비록 계약의 당사자는 도교육감이라 해도 사무는 학교장에게 위임돼 있긴 하지만 학내 비정규직 처우나 신분 보장에서는 한 단계 성숙된 법령의 개편이었다. 시기상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L씨의 해임사건 이후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교육계 비정규직의 현실이 공론화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비정규직 600만 시대. 연일 신문과 언론지상에는 상대적 사회적 약자를 짓누르는 ‘갑질’이 언급된다. L씨는 지난 4년간 정들었던 직장으로 돌아간다. 그의 신분은 4년 전과 같은 ‘비정규직’이다. 4년전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원에만 수십 차례 들락거린 그가 넘은 것은 작은 문턱일지도 모른다. 또다시 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를 현실. 그 현실의 벽을 낮추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지금은 제3자처럼 보일 수 있는 L씨가 우리의 부모나 형제…또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 때로는 ‘내’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해당 중학교 관계자는 “L씨의 해고무효소송 승소와 이에 따른 도교육청의 공문이 복직 근거이며, L씨의 희망에 따라 내달 1일 복직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L씨 복직 후 “영양사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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