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나 행동이 이치에 어긋나다’, ‘자기 스스로 이치에 맞지 않고 상반(相反)되다’, ‘모순을 풀려고 해서는 풀기 어렵다’ 등의 의미로 자기가 한말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아 스스로 부딪칠 때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서 유래되었다.
초(楚)나라에 병기(兵器)를 파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선전의 효과를 얻어 장사의 재미를 보려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서 창(矛)과 방패(盾)를 손에 들고 무예의 시범을 보였다. 그는 있는 힘껏 기량을 뽐내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들 보세요. 이 방패는 튼튼하기가 다른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아무리 예리한 무기라 해도 찔러 뚫을 생각을 못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큰소리를 치며 계속 떠들어 대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병기상자에서 창 한 자루를 뽑아 들면서 번뜩 빛을 보이더니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여러분 이 창은 순수한 강철로 만들어져 날카롭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물건이라도 다 뚫을 수가 있습니다”라며 하늘을 향해 힘껏 찔러 보이자 번쩍번쩍 은빛을 내면서 하늘에 창꽃을 그려내어 훌륭한 창인 양 뽐내었다. 이때 한사람이 사람들을 밀치고 나서면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이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찔러 뚫어보면 어떻겠소”하고 물으니 그 병기를 파는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비자는 “같은 세상에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우기는 사람이 많다”고 통탄했다. 스스로 서로 모순이 된다는 ‘자상모순’은 그래서 나왔으며 ‘자가당착’이 같은 맥락의 고사성어이다.
‘갈등’은 칡덩굴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이 어우러진 말이다. 이 단어가 ‘서로 어긋나 싸우다’는 뜻으로 발전한 것 역시 두 나무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칡덩굴은 나무를 탈 때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는다. 두 나무가 같이 있다면 필경 어긋나고 싸울 수밖에  없다. 중국어 ‘갈등’에는 어긋나고 싸운다는 뜻이 없다. 칡뿌리와 등나무일 뿐이다. 한국어의 갈등에 가까운 중국어는 ‘모순’이다. 어느 축구해설가의 말에 의하면 축구는 서로의 실수에 의하여 승부가 나는데, 감독의 주문대로 완벽하게 한다면 수비수는 어떤 공격도 막아내야 하고, 공격수는 어떤 빗장수비도 뚫어내야 하는데 그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자상모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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