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란 “나와 우리”라는 하나의 집단인 것을 말한다. 자아성찰(自我省察)은 상대편을 의식하여 자아의 행동과 존재를 스스로 반성하여 살피자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타의(他意)에 의해서 자아의 행동을 비판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자아에 대한 상대편의 객관적 평가든, 주관적 평가든 자아의 마음은 불쾌해 진다. 그 원인은 성찰자세가 없기 때문이다. 자아성찰은 자아의 언행과 업무에서 문제점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인간사회에 자아성찰을 하는 것은 쉽지 아니하지만, 그 효과와 가치는 매우 큰 것이다. 선진국 국민들은 자아의 행위에서 성찰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편과 대화로서 문제를 개선하려한다. 그러나 후진국 국민들은 자아의 자존심을 앞세워 대화가 감정으로 비약되어 문제가 문제를 더 키워 버리는 수가 있다.우리사회의 다양한 삶의 현장을 찾아보면 유감스러운 일이 너무 많다. 농촌사회는 자기가족과 자기농토에서 소득이 많든, 적든 그것으로 생활한다. 완전한 독립생활이다. 이런 농촌이 무슨 원인에 의해서 주민 간에 다툼이 종종 일어난다. 그 다툼을 보고, 듣고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당까지 일으켜 마을의 정서를 험한 분위기로 쌓여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자아성찰이 성숙하면 그런 분위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공직사회는 눈에 보이지 아니한 머리싸움과 마음의 싸움이 있다.  선의의 경쟁심에서 자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공직사회의 의식이 조성되어 있으면 그 의식은 지역발전과 지역민을 유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공직에는 좋은 자리와 승진문제가 있어, 암암리에 과잉충성과 시기, 다툼이 있다. 그런 흐름이 불미스러운 문제(뇌물, 부정, 부패)를 일으키고, 민폐와 불신, 비판의 소리를 높이게 한다. 자아성찰의 공직풍토가 조성되어지면 그런 문제는 사전에 차단되는 것이다.
지방자치제 제도가 생긴 이후에 모든 지방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임의단체 또는 법인단체가 조성되어있다. 이런 단체 중에는 정부나 지방관청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단체도 있다. 이런 단체는 운영에 공정해야하고, 설립목적이 공익성을 위하는데 있는 한 성실해야하며, 유명무실, 비리, 사익, 부정한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민간단체는 봉사정신으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공재정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정권이나, 정부기관에 법을 무시하는 언행은 자아성찰로서 문제발생을 차단하면 국가와 지역은 명예롭게 발전 할 것이다.
모든 국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기업이 있다. 기업체는 자본투자 측과 경영 측, 그리고 노동자로 구성되어 국가, 국민, 자본가와 경영자, 노동자에게 소득을 안겨주며, 기업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공공기업은 노동조합이 현성되어 있어, 사항에 따라 노조는 경영 측을 상대하여 투쟁을 한다. 임금, 복지, 노동환경의 문제는 노조요구의 기본과제다. 그러나 기업 경영권, 인사권, 정부고용정책권 등은 비록 노조의 힘이 강하다고 해서 투쟁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노조의 주장은 자유이지만 행위는 법규의 제재를 받는다. 따라서 노조행동이 법규를 무시하고, 기업체와 국가경제, 나아가서 지역민의 생계에 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들뿐 아니라 여타에게 해롭게 하는 것이며, 노조의 존재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소수의 대기업과 공공기업의 노동자와 임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분쟁도 많이 한다. 중소기업의 노동자는 낮은 임금으로서 가족생계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런 차별적 노사실태는 자아성찰의 정신과 실천으로 비건설적인 풍토를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
 전술한 것 이외에도 사람사는 곳에 크고 작은 자아도 있고, 문제도 있다. 이런 제반문제들은 “자아성찰”의 과정을 거치면 그 결과는 비효과적인 문제발생을 예방하고, 안정과 화합, 발전이 있을 것이지만, 자아가 유아독존적 사고나, 행위로 자아를 지배하게 되면 자아자체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고, 타의 간섭과 제재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찰은 자아존재를 불안하게 할 것이다. 누구든 타의에 의한 간섭이나, 비판은 싫어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그러나 싫다고 해서 간섭과 비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아성찰은 조용한 개선으로 발전해 가지만, 유아독존의 독주는 피를 보는 혁명을 초래하는 것을 인류역사에서 볼 수 있다. 상대편의 건설적인 비판도 필요하지만, 더 건설적인  것은 자아성찰의 방법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전자용어(電子用語)에 “feed back"이란 용어가 있다. 이 용어를 사회과학으로 이용하면 모든 업무나 언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성찰하자는 것과 행위 이후에도 그것을 자아성찰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자아성찰을 성실히 할 때 자아의 존재가치는 빛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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