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가 뚜렷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아 보인다.
흔히 ‘갈등’으로 표출되는 상황은 명확한 정의와 반대의 부정의가 충돌할 때보다 정의와 정의가 충돌할 때 발생한다. 이 갈등을 풀어내야 하는 이가 느끼는 딜레마도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담겨진 정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발생한다.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몇 년 전에는 미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정치철학자료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이 인문학의 부흥 움직임과 더불어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정의와 관련된 각종 딜레마를 비롯해 공리주의, 자유주의, 칸트의 철학 등 서양 철학의 근간을 따라 흐르는 공동체주의를 정의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필자도 오래전 탐독했던 책이라 기억이 어렴풋하긴 하지만 저자는 책 중 일부 내용에서 제목과는 달리 무엇이 정의인지 가늠할 수 없는 여러 상황을 제시하며 갈등을 해결하는데 우선적으로 가치를 둬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고 공익이라는 개념을 끌어당긴다. 거기서 공익은 반드시 다수가 원하는 것과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도 독자가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만든다. 또 시장논리가 확장돼 가는 과정에서의 가치를 분배하는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이번 주에 보도한 이동면 A농장의 돼지사체 유기건과 마늘축제 명칭을 둘러싼 양측의 논란을 보며 다시금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떠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동면 A농장의 돼지사체 불법 유기 및 매립 시도 사례를 먼저 언급하자면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된 공무원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업자와 행정의 유착 의혹으로 연계되며 마을 주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또 이 논란에서 돈사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해 누적된 불편을 호소해 온 주민들의 아린 심정을 보상받기에 과연 1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은 비록 법에 규정된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나 처벌의 정의(正義)와 부합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 이 사건이 촉발돼 주민들은 돈사 이전을 주장하며 농장을 운영하는 사업주와의 마찰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농장주에게 보장된 영업행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연결될 듯 하다. 농장주 입장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과는 별개로 향후 전개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은 정의가 아닐 것이다.
마늘축제 명칭과 관련된 논란도 그렇다.
10년째 이어져 오고는 있으나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라기엔 스스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지역주민 위안잔치만도 못한 마늘축제의 체질을 한우와 결합시켜 축제의 현장구매력을 확대시키는 등 홍보 중심의 낭비적 축제에서 축제경영의 마인드로 접근하겠다는 남해군의 정의와 가뜩이나 힘든 여건에서 행정 스스로 군내 농업의 근간인 ‘마늘산업’을 ‘위기’라 칭하면서 이와는 상반된 마늘축제 명칭 변경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군내 마늘재배농가의 입장이 상충되는 것도 정의와 정의의 충돌에서 비롯된 딜레마다.
두 사안 모두 각자 입장에서 보면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정의의 상충이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그의 저서에 다양한 정의에 대한 정의(定義)에서 공동체 전체의 좋은 삶과 공도선에 대한 답을 천천히 찾아보자고 한 것을 떠올려 보면 정의와 정의의 상충이 갈등으로 비화되기 이전 서로 미덕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충분한 토론과 설득, 이해의 과정이 생략된 듯한 느낌이 들어 답답하다. 두 사안 모두 원만한 해결책이 고민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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