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한 말로 고려중기 문신 이규보 선생이 남긴 말이다.
호는 백운거사로 9세 때 이미 신동으로 불렸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시·술·거문고를 즐겨 스스로를 ‘삼혹호(三酷好)’라 불렀다.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등이 있고 다수의 시문(詩文)을 남겼다. ‘유아무와 인생지한’은 선생이 몇 번의 과거에 낙방한 후 초야에 묻혀 살 때, 집 대문에 붙어있던 글귀이다.
임금이 하루는 민심을 살피기 위해 혼자 야인으로 변장해 암행(暗行)을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요행히 불빛이 있는 외딴집을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간청했지만 집주인(이규보)이 조금만 더 가면 주막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임금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발길을 돌리던 임금은 그 집 대문에 붙어 있는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라 쓰인 글귀에 궁금증을 갖고 ‘개구리가 도대체 뭘까’라고 한참을 고민했으나 도저히 알 방도가 없어 주막의 주모에게 물어봤으나 집주인인 백운거사가 “과거에 낙방한 후 오직 집에서 책만 읽으며 두문불출한다”는 대답만 돌아왔을 뿐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궁금이 극에 달한 임금은 다시 이규보 선생의 집을 찾아 간청한 끝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는데 임금이 이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이렇다.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3일 후 노래시합을 하자는 제의를 하며 심판은 두루미를 하자고 했다. 까마귀는 노래는 커녕 목소리도 엉망이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꾀꼬리는 시합에 응하기로 했다. 꾀꼬리는 이후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런데 까마귀는 연습은 안하고 개구리 잡는데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까마귀는 그렇게 잡은 개구리는 심판관인 두루미에게 갔다 바치고 뒤를 부탁한 것이다.
3일이 지나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경연을 마치고 두루미의 판정만 남겨두었다. 결국 노래를 못한 까마귀의 손을 들어 주었다. 까마귀가 두루미한테 상납한 개구리 뒷거래 탓이었다.
돈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에 낙방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백운거사가 한 말을 들은 임금은 며칠 후 임시과거가 있다고 해서 한양으로 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궁궐에 들어와 임시과거에 응할 것을 권했다.
시험관이 내걸은 시제(試題)가 곧 여덟 글자 ‘유아무와 인생지한’이었다. 응시자들이 고민하고 골몰하는 사이, 이규보는 답을 써낸 다음,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절을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 물론 장원급제하여 그 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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