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에 있었던 홍준표 경남지사의 남해군 연두순방에서  남해군의 발전 방향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설왕설래 하였지만 홍지사가 언급한 천혜의 관광자원을 토대로 한 힐링 아일랜드 남해 즉 세계적 휴양도시로 발전하는 데에 적극지원하겠다는 약속에 대하여 필자는 기대하는 바가 가장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대에 남해군민이나 행정당국이 부응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의심도 갔다. 왜냐하면 이러한 큰 그림에 대한 기대 혹은 요구사항보다  주로 도로 확장과 조성 사업들만 요구한 군내 지도자들에 솔직히 말하면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실망감에 잠겨 있던 차에 정을병 소설가(1934-2009)의 문학비에 대한 행정당국의 태도가 변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그리고 몇 주전 남해신문 기자가 집중 취재한 정을병 문학비 건립에 대한 기사의 후문도 궁금하여지기 시작하였다. 즉  오래 전에 있었던 정을병 소설가의 남해군민에 대한 비하 발언에 대한 앙금이 아직 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을병 소설가와 필자의 첫 대면은 확실한 연도는 기억할 수 없으나 1970년대 후반이었으니 30년도 훨씬 전이다. 서울의 조선일보 사옥이 있는 코리아나 호텔 커피 숍에서였다. 필자가 1976년 봄 부산대학교 교수가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필자가 아내와 함께 서울의 지인들을 몇 사람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정을병 소설가와 첫 대면에서 그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는 그 당시 대한가족계획협회 간부로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가족계획의 성공에 대하여 그 자신의 특유한 표현으로 신날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 사람들이 보급한 잘못된 사업이 바로 가족계획인데 이것을 지구 상에서 가장  성공한 곳이 한국인데 자기 생각으로는 30년쯤 지나면 이 제도 때문에 우리 나라는 큰 낭패에 빠질 것이라는 요지였다. 그 당시 우리 나라의 가족계획 구호는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으며 필자 역시 이 시책에 호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닌 정을병 소설가의 입에서 이 러한 주장을 들어니 솔직히 그 당시로서는 어리둥절했으며 정말 지독한 독설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30여년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최저의 출산율을 그 자신은 그 당시에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예칙하는 눈으로 그는 한국 최고의 풍자소설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유달리 그리스가 배경이 된 것이 많다. <까토의 자유>와 <아테나이의 비명碑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하여  정 소설가와 같은 면(이동면) 출신이자 동갑이며 아직까지 생존해 계시는 철학자이신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평론가로서 집중적으로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다산의 작가였으나 작품의 밀도는 떨어지지 않았으며 의료계의 비리를 파혜친 <유의촌>은 《주간 한국》에 연재 되면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여 《주간한국》을 주간지의 대명사가 되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으며 그의 미래사회에 대한 예칙력으로 소설가들이  정보화사회에 대비하여 많은 혜택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민주화의 기수로 탄압을 받기도 했으며 재일 교포 간첩 사건에 연류되기도 했으나 그의 확고한 국가관과 끈질긴 의지로 무죄선고를 받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한국에 유치된 국제펜대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그 폐막 연설 또한 우리 나라의 위상을 높힌 명 연설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 문학사에 충분히 남을 국제적 소설가요 자랑스러운 남해인이다.
 작고한 문신수 소설가나 현재 한국 소설가협회 이사장인 백시종 소설가나 필자 역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으며 남해 문인들에 대한 사랑도 넘쳤다. 그리고 난 애호가로서 남해의 자생란 보호에 앞장 서기도 했다. 그러한 그가  남해 사람들을 비하한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 역시 그 때에 인터뷰한 글을  읽었다. 그 글에 남해인들과 임진왜란의 관련성 운운은 사실 정 소설가의 역사 인식의 잘못에서 왔으며 오늘날의 남해인들의 조상 거의 대부분은 임란 이후에 남해에 들어온 사람들의 후예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인터뷰의 방점은 남해 사람들의 지나친 물질과 권력 지향적인 현실주의를 지적하는 과정에 나온 헤프닝이며 정 소설가 살아 생전 남해군 당국과 화해하여 소설가협회이사장 시절 소설가협회 행사를 남해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남해가 국제적 힐링 도시가 되기위해서는 남해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문학과 예술과 같은 문화도 국제적 수준이 돼야 한다. 그래서 <노도문학의 섬>푸로젝트도 시행하고  <유배문학관>과 <김만중문학상>도 운영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도 유배문학관은 남해 관문에 위치하면서도 황량하기만 하고 남해군에는 공원 다운 공원도 하나 없다. 필자는 경남 창녕군을 오래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곳은 가야 고분군과 진흥왕 순수비도 유명하지만 공원도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고. 그곳에는 작고 창녕 시인과  현역시인의 시비도  세워져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남해군보다 내세울 것 없는 다른 지지체에서도 공원을 마련하여 그곳에 그 지역 예술가들의 기념비를 세워 기리고 있다.  사실 문신수 선생의 문학비도 그 세워진 위치 때문에 일반 관광객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따라서 이미 세워진 문신수 선생의 문학비와 고향 마을에 세울 수밖에 없게 된 정을병 소설가 말고도 남해를 사랑한 작고 시인, 수필가 등의 문학비를 세울 공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반 관광객들에게 남해의 문인들을 유배문학 못지 않게 자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남해는 유배자의 섬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배문학관 경내에 남해현대문학관을 세워 남해에는 유배문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문학도 있다는 사실도 알려야 할 것이다.
  세계적 휴양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일찍이 일점선도一點仙島라는 남해의 자연환경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그곳에 품격 있는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여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노도문학의 섬>도 마련해야 할 것이요, 서불과차나 등자룡 장군 유적지와 함께 남해가 낳은 문인, 화가, 도예가 등의 유적지가 품격 있게 마련돼야 진정한 국제적 힐링아일랜드가 되는 것을 남해군 행정당국과 군민들이 인식해야 될 것이다.

/양왕용(시인, 부산대 명예교수,<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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