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난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에,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윤달이 들어있는 해에는 반드시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들게 되며 겹친다하여 복입춘(複立春), 두 번 맞는다하여 재봉춘(再逢春)이라고 부른다.
입춘이 되면 새봄을 맞는다는 의미로 집안의 기둥이나 문설주, 대문 등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 등을 써서 두루 붙인다.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건양은 19세기말 고종 33년부터 다음해 34년 7월까지 쓰인 고종황제의 연호(年號. 1896~1897)이다. ‘건양다경’의 ‘건양’은 이때 처음으로 양력을 도입했기 때문에 음력에서 양력을 사용하며 양력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건양다경’은 그 당시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을 기원하는 뜻에서 대궐이나 고택 등에 많이 붙였다. 그리고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고, 자식은 만년까지 번영하라)’ 등의 옛 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거나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지어 춘련(春聯. 글씨)을 써서 봄을 축하하는 민속의 입춘방(立春榜 대문, 문설주, 기둥 등에 글귀를 붙이는 것)이 전래되고 있다.
예부터 입춘절기가 되면 농촌에서는 농사준비를 한다. 아낙네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보관해 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해 농사에 대비했다. 1년 농사의 시작이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한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며 더불어 어둡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날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입춘 때 받아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한 물로 여겼다고 한다. 그때 그 시절은 가난해도 근면하고 끈질기게 열심히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歲時民俗)과 미풍양속(美風良俗)으로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입춘한파'니 '입춘추위 김장독 깬다'는 등 간혹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 하듯이 아직도 추위는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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