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마친 뒤에는 금강산 온천에 가서 피로를 푼 뒤 비빔밥으로 점심을 급하게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나게 다가온 적은 일찍이 없었다. 식사 뒤에는 현대 아산이 북측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농장>을 견학했다.


현대 아산이 경영하는 남북합작 농장으로 가는 동안 북측 벌판에는 소학교 아이들까지 나와 가을걷이에 한창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측 같으면 콤바인 한 대면 다 해결될 일을 그곳에서는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현대농장에는 남측에서 가져온 배추와 무와 고추, 그리고 피망과 상추와 평양 1호라는 키 큰 배추도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재배한 농산물들은 온정각에서 관광객들의 먹거리로 쓰인다고 했다. 금강산의 절경이 주는 감동도 대단했지만 현대가 남북합작으로 만들어 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느낀 감동도 대단했다.

현대농장에서 돌아와 4시 30분부터 평양기예단 공연을 구경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란 귀에 익숙한 노래로 공연분위기를 돋구더니 드디어 백두산 풍경을 담은 무대에 신비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의 공중묘기가 펼쳐졌다. 접시던지기, 줄넘기, 그리고 마지막 공중돌기묘기까지 인간의 가장 높은 기술과 예술이 어울려진 평양 모란봉 기예단의 공연에 관광객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저녁이 되어 금강산 콘도에서의 저녁식사 때 한 순배 술이 돈 뒤 우리측의 부탁으로 북측 접대원들이 노래를 불렀다. ‘잠시 만나도 심장에 남는 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그 자리의 의미를 깊게 해 주었고 나도 그 자리의 감동에 화답코자 "현대가 길을 닦고, 온 민족이 힘을 합쳐 통일의 길로 함께 갑시다"는 건배사와 함께 <남누리 북누리>라는 노래를 불렀다.


셋째 날,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아침부터 날씨가 흐릿하여 마음이 침침했다. 이번 주에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금강산 봉우리마다 구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금강산 만물상 입구에 도착하자 바람에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망양대(望洋臺)를 오를 때까지 구름과 바람은 계속해서 숨바꼭질을 했다. 우리는 귀신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귀면암(鬼面岩)과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인다는 망양대, 그리고 만물상 전체의 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天仙臺)까지 홀린 듯 둘러 보았다.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천선대! 철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사방으로 둘러보니 구름은 허리춤으로 흐르고 병풍처럼 둘러친 만물상의 모습에 "신선이 사는 동네인지 부처가 사는 동네인지 도무지 인간세상이 아니로다"라는 뜻의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라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마지막 구절이 저절로 되살아났다.

천하절경을 뒤로 둔 채 하산하여  금강산 온천에서 목욕하고 3시 30분쯤 여장을 챙겨 남측 고성 땅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 반이 넘었다. 설악산 단풍구경을 갔다 오는 행락인파로 인해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지만 나는 금강산이 주는 감동으로 인해 새벽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민족이 겪는 고난의 밤이 깊을수록 통일의 새벽은 그만큼 빨리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금강산 입구에 서 있는 대형 입간판에 적힌 글처럼 ‘금강산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다. Mt GumGang, the biggest diamond on earth.’ 그리고 그곳 금강산에서 만큼은 우리민족이 이미 하나로 통일되어 가고 있음을 가슴 뜨겁게 확인할 수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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