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 : 닦을 수,  身 : 몸 신,  齊 : 가지런 제,  家 : 집 가

사서삼경(四書三經, 논어·맹자·중용·대학, 시경·서경·주역)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유교에서 올바른 선비가 해야 할 길을 강조한 말이다.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뜻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후에 알게 되고 알게 된 후에 뜻이 성실해 진다. 성실해진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후 집안이 바르게 된다. 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수신제가가 유래한 표현이다.
각자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데 힘을 쓰고 내 한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수신제가의 뜻인데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라고 한다.
무위자연이란 만물의 흐름을 작위(作爲)하지 않고 그 스스로 완성을 이룬다는 의미로 즉 세상을 바꾸러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할 때 자연행위 완성적 행위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으로 근본이 내 한 몸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에 있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의,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 자연적으로 제가(齊家), 즉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 질 것이다.
제레미 벤덤은 “별을 따르고 손을 뻗는 사람은 자기 발밑의 꽃을 잊어버린다”고 말했고 이 말은 성공을 위해 가족도 자신도 팽개치고 내달리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문구로 수신제가는 자기가 희생되고 헌신하는 커다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이 집안도 잘 다스리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이혼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수신제가가 쉽지 않고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일부러 드러내는 거짓행복도 많고 보이지 않는 진짜 행복도 많다. 마음속에서 부러움이 순간적으로 솟아나면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나는 나대로의 행복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내 삶을 챙겨야 할 것이다.
 삶의 고단함은 인간에게 서로에 대한 시선마저 앗아가 버린다. 매일 삶의 고된 노동의 연속에서 피로가 축적되어 타인의 삶에 관심이나 애정을 갖기가 힘들다. 사회 구성원간의 대화단절과 거리감, 편법과 부정부패의 토양을 만들어내고 정의와 도덕같은 가치들을 묵살해 버리는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아 온갖 사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도 있지만 수신제가를 망각한 처사라고 할 것이다. 고려말 백운 이규보선생의 ‘유아무와인생지한(有我無蛙人生之恨, 과거 시험문제의 시제)이란 말이 있다.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게 인생의 한이다.’이규보가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하고 조명해본다. 낙하산인사, 금품선거,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 해묵은 낡은 산물들을 말끔히 청산해야 할 텐데…….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